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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Eye screening을 다녀왔다. 다녀온 내 느낌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미안하고 불편하다”이다. 수 많은 사람들이 왔다. 새벽 4시반에 screening 장소에 도착했는데 벌써부터 사람들이 와 있었다. 어두운 밤인데 얼굴도 어두워서 잘 보이지가 않았다. 그런 사람들이 이미 40~50명 정도 와 있었던 것 같다. 아침이 밝아오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이 점점 더 모이기 시작했다.

Screening 장소는 로컬병원이었고 병원 입구의 좌우로 길게 두 줄을 만들었다. 한 줄은 남자, 다른 한 줄은 여자와 어린이로 분류했다. 길이 울퉁불퉁 한데다 비까지 와서 매우 미끄러웠기 때문에 나는 환자들이 잘 이동할 수 있도록 돕고 차량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통제하는 일을 맡았다. 대부분의 사람이 프랑스어나 수수족...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환자들과 의사소통 하는데 어려운 점이 있었다. 그나마 영어를 하는 사람들에게도 이해를 위해 손짓 발짓을 해가며 설명을 해야 했다.

그 이른 시간에 가깝지 않는 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희망을 가지고 몰려 들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아버지의 손을 잡고, 자신처럼 다리에 장애를 지닌 두 자녀들을 데리고, 결핵에 걸려서 고생하는 누나를 대신해, 그렇게 각자의 사연을 지니고 하나 둘씩 모여들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그들이 지닌 질병과는 비교할 수 없이 많은 사연들이 있었고 그것보다 더 큰 기대와 희망이 오늘의 아침처럼 밝아져 왔다.

그러나 그 희망이 희망고문에서 끝나게 된 사람들도 너무나 많이 있었다. 오늘 우리가 보는 질환은 백내장뿐이기 때문이다. Mercy Ships이 기니에 있는 동안 그 많은 사람들이 앞을 보게 되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또 그만큼의 사람이 실망하는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아야 했고 마음이 너무 아팠다. 연락처를 받아서 어떻게든 도움을 주고 싶었지만 screening을 지휘하는 분들은 그 생각에 동의하지 않고, 그저 또 다른 screening 공지가 라디오에서 있을 거니까 주의 깊게 들으라는 말만 전하라고 했다.

내가 좀 더 영어를 잘 해서 의사소통이 되었다면 관계자 분들을 설득해서 시스템을 조금 바꿀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의사였다면 다른 질환을 가지고 그곳에 온 환자들 중에서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을 선별해서 contact information이라도 받아둘 수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다시금 수술한 환자를 모으기 위해 또 다른 screening을 시작할 때 그 사람들에게 기회가 돌아가도록 해줄 수 있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무거웠다. 안타깝다 못해서 화나고 속상했다.

한 청년은 눈에 다래끼가 크게 나서 왔는데 그냥 돌려 보내야 했다. 치료를 하지 않아서 상당히 커진 상태였다. 그러나 수술하는 것이 그리 어려울 것 같지는 않았다. 안과학 공부할 때 다래끼는 마취하고 배농해 주면 되는 거로 배웠으니까. 그런데 그 청년은 그냥 돌아가야 했다. 백내장만 받기 때문에 너무나 쉽게 치료할 수 있는 환자가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리고 그 청년은 그걸 불치의 병으로 알고 눈에 지닌 채 살아갈 것이다. 더 심해져서 눈이 안보이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안과전문의가 한 명이기 때문에 그런 사소한 환자까지 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Mercy Ships이라는 NGO가 작은 단체가 아니고 상당히 큰 규모의 의료봉사 단체인데 이런 screening에 의사가 한 명뿐이라는 것은 상황이 그렇다고 이해하고 넘기기에는 문제점이 있는 것 같다. 34개국에서 모여드는 거대한 네트워크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라도, 적어도 환자를 선별하고 수술 스케줄을 잡는 이 중요한 시기에는 더 많은 인력을 동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자세한 사항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많은 이야기를 하지는 못하겠지만, 오늘 왔던 사람들 중의 반 이상이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돌아가야 했다는 것을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우리는 이미 좋은 일을 하고 있고 모든 사람들을 도와줄 수는 없다’고 하기 이전에 어떻게 하면 더 효과적으로 도와줄 수 있을까를 생각해 봐야 한다. 사실 이건 의료진이 나서서 해야 하는 일이다. 비의료진은 얼마나 더 많은 의사가 필요한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돌아가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지금 일하고 있는 안과전문의는 이미 자신이 몇 백 명의 백내장 환자를 수술하고 있고 그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쉽지 않기 때문에 또 다른 변화를 생각하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튼 여러 부분에서 아쉬운 점이 많은 screening이었다.

 

2.

또 한 가지 들었던 생각은 세상에 왜 이렇게 아픈 사람이 많은가 이다. 의료가 발달하지 않은 나라에서는 피부병, 결핵, 에이즈 등등의 감염질환들이 성행하고 의료가 발달한 나라에서는 암, 비만 같은 만성질환이 많아진다. 결국 의료의 발달과 관계 없이 각 나라의 환자들 수는 별반 차이가 없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아프리카가 질환이 더 많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상 그들이 가진 질환의 종류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많지가 않다. 단지 우리 사회에서는 쉽게 고칠 수 있는 그런 질환들이 많을 뿐이지 종류가 다양한 것은 아니다. 거기다 아프리카 사람들이 알고 있고 의식하고 있는 질환은 많지가 않다. ‘모르면 병이 안 되는 병들도 많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후진국과 선진국 중에 어디가 더 환자가 많을지는, 어디가 자신의 건강에 문제가 있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을지는 모르는 일이다.

난 이런 현상을 보면서 정말 불가항력을 느낀다. 잘 살면 살쪄서 병 걸리고 못 살면 못 먹어서 병 걸린다. 의학이 이런 사회를 세상을 고칠 수가 있을까? 어떻게 생각하면 정말 무의미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100명이 계속 병에 걸리고 있는데 10명을 치료하면서 난 세상을 치료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느낌이다. 지금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을 적어보면 이렇다. 외모를 너무나 중시하는 사회가 머리 빠진 것을 질병으로 생각하게 만들고 많은 사람들이 탈모를 병처럼 여기게 되었다(물론 이건 사회의 문제뿐만이 아니라 개인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래서 없어도 되는 성형외과 의사들이 너무나도 많이 생기고 그들은 엄청난 돈을 벌고 정작 필요한 곳에서 필요한 의술을 베풀어야 하는 의사들이 없다. 이미 그것으로도 불균형이 시작된다. 사회가 만든 질병 때문에 사회의 구조가 점점 이상하게 바뀌어져 가는 것이다.

그럼 이 상황을 바꿀 수 있는 것이 의술일까? 우리가 포커스를 맞춰야 하는 것이 탈모를 사라지게 하는 것일까 아니면 탈모가 개성이 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일까? 뚱뚱한 사람이 지방흡입수술을 완벽하게 잘 받을 수 있어야 되는 것일까 아니면 뚱뚱해도 기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일까? 그런 의미에서 의사들은 이미 틀어진 사회구조 속에서 거기에서 파생한 질병들을 고치게 되는 경우가 너무 많다. 잘못된 식습관이 가져오는 비만, 흡연이 가져오는 폐암, 과도한 음주가 가져오는 간질환 등등.. 이런데도 병만 바라보고 병만 고친다고 의사로서 보람을 느끼고 할 일을 다한다고 만족해야 하는 것일까? 이 생각은 좀 더 정리가 필요한 생각인 것 같다. 지금 내가 잠정적으로 결론 내릴 수 있는 것은 의사들이 겸손해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3.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쓰고 싶지만 이건 다음에 써야겠다. 아프리카 사람들이 이 사회에서 어떻게 이용당하고 있는지, 특히 믿는 이들이 어떻게 이용하고 있는지에 대한 것이다. 난 한 때 농아인들을 너무 너무 너무 사랑했다. 내가 그들과 함께 함으로 나는 더 선해졌고 내 삶은 균형을 찾았으며 내가 가치 있는 존재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에 대한 내 관심과 행동은 오직 내 필요에 묶여 있었다. 그래서 난 그들을 그들 자체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그들을 날 위한 도구였던 것이다.

여기 아프리카에서도 이런 일들이 너무나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스스로 돌아보고 또 돌아보자. 기도와 말씀으로 나 자신을 점검하자. 이 삶의 터전에서 주인공은 이들이고 난 주인공이 아니라 빛 없이 왔다가는 조연이다. 난 이들과 같은 눈 높이에서 이들과 친구가 되려고 왔다. 내가 줄 것이 있듯이 이들이 내게 줄 것이 있고 난 그것들을 받고 싶다. 그것이 친구가 되는 것이다. 이들을 동정의 대상으로 봐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눈에는 이들과 내가 형제이며 둘 다 사랑스러운 존재들이며 둘 다 죽기까지 사랑하는 사람이다. 이 사실을 명심하고 겸손히 무릎 꿇고 이들에게 나아갈 수 있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2012년 9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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