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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했던 오프가 끝났다. 내일부터 이틀간 중노동이 또 시작된다. 어떻게 하면 그 시간을 효율적으로 보낼 수 있을지 생각 중이다. 오늘은 하루 종일 푹 쉬었다. 식사도 여유 있게 하고 오전 오후는 책보고 영어공부를 하면서 보냈다. 저녁에는 아직은 낯설기만 한 사람들과 10 phase라는 카드게임을 했다. 고스톱을 가지고 왔으면 좋았을걸 하는 생각도 아주 잠시 들었다. 오전에 읽은 책은 In the name of Jesus라는 헨리 나우웬의 책인데 마음에 새겨지는 구절이 두 가지 있었다. 

Knowing the heart of Jesus and loving him are the same thing. 

하나님을 아는 것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같은 것이라는 말인데, 다시 말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는 의미이다. 내 삶을 돌아봐도 그렇다. 내가 하나님과 정말 깊게 관계 맺었을 때 하나님은 사랑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사랑할 수 밖에 없는 대상이었다.

지금은 하나님을 향한 그런 자연스럽고 자유로운 사랑의 마음을 많이 잃어버린 것 같다. 모든 것이 권태기에 빠진 연인처럼 당연하고 지루하고 때로는 불평할 것들도 많이 보인다. 이런 내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려고 노력하는 것보다는 그분이 어떠한 분이신지 바로 아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경험, 생각, 거기서 비롯된 확신 아닌 확신들, 이런 것들을 내려놓고 그저 조용히 그분 앞에 서는 시간이 지금의 내게 필요한 것 같다. 그래서 나를 이곳에 부르셨는지도…

The desire to be relevant and successful will gradually disappear, and our only desire will be to say with our whole being to our brothers and sisters of the human race, “you are loved. There is no reason to be afraid. In love God created your inmost self and knit you together in your mother’s womb” (See Psalm 139:13)

핸리 나우웬은 하버드에서의 교수생활을 접고 정신박약장애인들이 모인 캐나다의 데이브레이크 공동체에 들어간다. 그곳에서 그는 자신이 가진 세상적인 타이틀, 예일에서 공부하고 하버드에서 강의했으며 책을 얼마나 썼고 어떤 상을 받았는지에 대한 것들은 그들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들에게는 나우웬의 영성, 인격, 성품과 같은 내면의 것들만이 의미가 있었다. 나우웬은 이런 장애인들과의 교제를 통해 영향력 있고 성공한 사람이 되려는 욕구는 점차적으로 사라지고 존재 자체로서 형제자매들과 소통하고자 하는 욕구가 커져갔다고 고백한다.

나를 돌아보면 날이 갈 수록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하는 것 같다. 거기에 목말라 있고 그런 목마름은 내가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면 될수록 점점 더 커져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올 한해 나에게 그런 것들을 버리게끔 이끌어 가시는 것 같다. 한 시대를 주름 잡았던 사람도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잊혀지기 마련이고, 누군가에게 오랫동안 기억된다 해도 기억하는 그 사람들이 결국 이 땅에서 사라지고 만다. 결국 마지막까지 날 기억하시는 분은 하나님 한 분뿐이라는 냉엄한 현실 앞에서 무엇을 내 기준에 두고 살아야 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된다. 내가 가진 지식, 능력, 타이틀, 건강 등은 내가 어디 있느냐와 내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서 찬양-감사에서 원망-불평까지 그 반응이 다양하게 나타날 수 밖에 없다. 예를 들어 기니 사람들에겐 내가 의학을 공부한다는 것이 별 의미가 없다. 약도 없고 할 수 있는 수술도 별로 없으니 의사라는 직업 자체가 이 나라에서 가지는 역할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축구 할 때도 그렇다. 한국에서는 공 꽤나 찬다고 생각했는데 작열하는 태양 아래에서 타고난 운동신경과 피지컬을 지닌 아프리카 친구과 공을 차니까 내가 언제 축구를 잘 했었나 싶다. 대부분이 이런 식이다.

Mercy Ships에는 약 40개국에서 온 사람들이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곳은 또 하나의 세계이다. 너무나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너무나 다양한 생각, 생활방식, 전통, 문화, 가치관 등이 공존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또 다른 나라인 서아프리카 기니에 와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여기서 내가 일으킬 수 있는 변화가 무엇일까? 한국인인 내가 아프리카에 왔을 때 내가 가진 것 중에 퇴색되지 않는 것이 뭐가 있을까? 생각해 보면 내가 가진 거의 모든 것이 퇴색한다.

그렇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사랑, 겸손, 섬김, 용서 같은 성경에서 말하는 기본적인 가치들인 것 같다. 이것이 나라와 국경을 뛰어넘는 보편적이 언어이고 모든 인류의 필요이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는 좋은 나라에서 좋은 교육을 받고 이런 곳에 와서 의료선교사 또는 전문인 선교사로 헌신하고 싶어 한다. 영향력을 끼치고 변화를 일으키려고 한다. 하지만 정작 이곳에 왔을 때 우리가 실질적으로 줄 수 있는 것은 그리 크지가 않고 오히려 우리가 가진 인격과 그 인격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전 존재로 증거하는 것이 이들에게 의미 있게 다가오는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한 사역들이 진짜 변화를 일으키는 열매를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쩌면 지금 내게 원어민 부럽지 않은 유창한 영어나 닥터 하우스 같은 의학지식 보다 더 필요한 것은 하나님과 관계 맺으면서 다듬어져 가는 내 인격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내 삶의 기준을 세상의 관점이 아닌 하나님의 관점 안에서 다시금 재발견 해야할 것 같다. 이렇게 많은 생각들이 오고 가는 하루이다.

2012년 9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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