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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수할 때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읽은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왜냐하면 내가 느끼고는 있지만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그런 감정들을 소름이 끼칠 정도로 거침 없이 표현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생각을 메스로 잘라 파헤치는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는 천재의 기질을 숨기지 못하였다. 그의 내면은 일반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고 공감하기가 힘든 더 복잡한 무언가가 아니었을까.

그런 의미에서 미우라 아야코의 『빙점』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보다 우리와 더욱 가까운 소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소설가는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그런 은밀한 것들을 모두 드러낸다. 그리고 어렵지 않게 풀어간다. 오랜 시간 병으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경험했던 이 여인의 글은 군더더기 없는 냉정함과 우리의 마음을 만지는 따듯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그래서 더 무서운 소설이라 느껴진다.『빙점』은 어떤 인간도 배반, 좌절, 절망, 죽음의 깊은 나락에서 헤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말 하고 있다. 게이조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두운 구멍은 자신이나 나쓰에게도, 그리고 누구의 가슴 속에도 누구의 가슴속에도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것은 이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이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생각했다. 첫째는 게이조나 나쓰에처럼 자신이 짓고 있는 죄에 대해 의식하지 않거나 의식하더라도 미움과 증오 또는 다른 어떤 것들로 그것들을 합리화 시키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요코처럼 죄의식이 강하고 죄에서 벗어나는 삶을 살기 원하는 사람. 세상이 더러워도 자신은 때묻지 않았다는 그 사실에서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 중 어느 한 사람도 도덕적으로 자유로워질 수 없으며 죽음의 길을 걸을 수 밖에 없다. 증오와 미움 속에서 그리고 자기 자신도 막을 수 없는 더러운 죄들에 억눌려서 사는 게이조나 나쓰에 같은 사람들에게는 삶 자체가 죽음이다. 그리고 요코처럼 죄에서 자유롭게 되고자 하는 사람들은 벋어날 수 없는 자기 속의 죄의 뿌리들을 틀림 없이 발견하게 될 것이고 결국은 죽음에 이르게 된다. 자신의 가진 죄의 뿌리를 받아들이게 된다면 삶 자체의 죽음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육체적인 죽음이 주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 인간의 문제는 도덕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과 우리는 어떤 길을 가든지 우리를 칭칭 감고 있는 죽음의 문제를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이 내 가슴을 울렸다. 그리고 “저의 핏속을 흐르고 있는 죄를 분명히 용서한다고 말해 주는 권위 있는 존재가 필요합니다.” 고 하는 요코의 마지막 외침이 자꾸만 떠올랐다. 그 말이 답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하나님을 믿어야 하고 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 내게 새 생명을 줄 수 있는지 조금 이나마 알 것 같다. 이 소설 정말 잘 읽은 것 같다. 속 빙점도 빨리 읽고 싶다. 

 

2006. 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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