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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수의 행하신 일이 이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

요한복음 21장 25절에 나오는 말씀이다. 이 말씀에서도 볼 수 있듯이 한 사람이 평생을 살면서 겪었던 모든 일을 기록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한 사람의 역사가 아닌 인류의 역사로 확장 될 때 그것은 우리가 기록할 수도 없고 존재할 수도 없는 무한대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렇다면 과거는 끝 없이 펼쳐진 알 수 없는 우주 같은 것인가? 그렇다. 하지만 우리가 과거를 알 수 있는 차선책은 있다.

그것은 사료를 통해 과거의 모습을 상상해 보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료가 과거를 알 수 있는 열쇠가 되는 것은 아니다. 과거라는 자물쇠에 맞는 열쇠를 찾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그 열쇠 즉 사료가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는, 과거의 일들은 수 없이 많은데 그 중에 오늘날 사료로 남은 것이 아주 적다는 것이다. 과장된 표현이지만 1을 무한대로 나누면 0이 되는 것처럼, 그 사료가 과거의 사실에 차지하는 분분은 무시할 수 있을 만큼 적다. 둘째는, 사료 자체가 가지고 있는 객관성과 사실성 그리고 정확성을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셋째는, 사료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기록들이 특정 계층의 관점으로 쓰여진 것이 많다는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과거라는 자물쇠를 시원하게 열어 볼 수가 없다. 가끔씩은 자물쇠가 조금 열릴 수도 있다. 그리고 과거라는 방의 문이 조금 열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틈 사이로 보이는 그 방의 아주 작은 부분뿐이다. 이것이 우리의 한계이고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역사가들은 상상력을 동원한다. 그 상상력으로 그 방의 모습을 만들어 보는 것이다. 이 같은 사실로 볼 때 과거는 객관적인 사실이기 보다는 객관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역사가가 만든 상상력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런 소설과도 같은 역사를 공부하는 것인가? 이러한 한계가 있는 데 왜 우리는 이렇게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알려고 하는 것인가?

 

2.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 그리고 한 자아가 자기 자신을 인식함은 과거의 기억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쉽게 말하면 어제의 내가 없으면 지금의 내가 없는 것이다. 과거의 기억이 없다면 나는 나의 정체성을 가지지 못할 것이다. 이것은 집단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한 집단이 그 정체성, 즉 Collection identify(집단 자아)를 가지려면 Shared memory(공유된 기억)이 있어야 한다. 사료를 통해 과거를 상상해보고 연구하고 공부하고 하는 것은 이 공유된 기억을 찾기 위해서이다. 과거를 통해 이 집단은 무엇이고 어떤 존재 의미를 가지며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바는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서이다.

한가지 예를 들어 보겠다. 나는 지금 SOUL 이라는 수화동아리에 있다. 그런데 회장으로 섬기면서 한가지 부딪힌 문제가 있었다. 그것은 SOUL 이 어떤 동아리 인지를 내가 보낸 1년이라는 시간으로 판단 내리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7년 전 우리동아리가 어떤 목적으로 시작했고 지금까지 어떤 활동을 했으며 어떤 문제들에 부딪혔고 그때마다 어떻게 해결했는지 알고 싶었다. 그렇지 하지 않는다면 우리 공동체의 정신은 이어지지 못하고 리더의 생각에 따라 좌지 우지 되기 때문이다. 내가 왜 이 공동체에 있어야 하는 것인가?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이 이 공동체의 원래 목적에 맞는 것인가? 혼란스러웠다.

이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는 나는 동아리의 과거를 알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자료를 찾고 모았다. 그 다음 몇 안 되는 그 자료들을 바탕으로 선배님들의 말을 들으며 내 나름대로 동아리의 옛 모습을 그려 보았다. 역사가만큼은 아니겠지만 나도 내 상상력을 동원했고 그 모습들을 흐릿하게 나마 그려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이미지들은 내가 리더로 동아리를 이끄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특별히 본질적인 문제, 즉 정체성의 문제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명확한 답을 제시해 주었고 그것을 바탕으로 앞으로의 방향을 정할 수 있었다. 물론 내가 머릿속에 그린 과거의 모습은 실제의 모습과 다른 것이 분명하다. 조금 열린 문이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어두 컴컴한 방에서 그 틈으로 새어 나오는 빛 한줄기는 그 어떤 것보다도 소중했다. 그 빛은 Soul이 지나온 8년 동안의 역사이다. 그리고 내가 속한 공동체의 역사가 가지는 의미와 중요성은 다른 역사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3. 

그렇다면 역사 속의 나는 어떤 존재인가? 첫 번째로 나는 역사를 알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다. 나의 identity를 찾기 위해 역사를 탐구하고 주어진 사료들을 객관적으로 대하며 그것들을 바탕으로 과거를 상상해 보는 사람이다. 그리고 지금 시대에 맞게 그것들을 재 해석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두 번째로 나는 역사를 이루어 가는 사람이다. 내가 한 일들은 미래에 역사가 된다. 비록 역사가들에 의해서 중요한 역사로 분류되어 역사책에 실리지는 않겠지만 내가 한 일의 일부분은 기록으로 남아 내가 지낸 시대의 모습을 상상하게 만드는 열쇠가 될 것이다. 그리고 나의 흔적들이 누군가에게 빛이 되리라 믿는다.

이쯤에서 정리를 하고 싶다. 역사는 과거의 사료를 통해 역사가가 과거의 모습을 떠올려 본 것이다. 객관적이고 절대적일 수 없지만 그 역사를 통해 우리는 지금의 우리가 어떤 존재이고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역사 속에서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역사의 중요성이고 우리가 역사책을 쓰고 그것들을 공부하는 이유이다. 우리가 올바른 판단력을 가지고 역사를 평가할 눈을 가진다면 역사는 우리의 모습을 환하게 비춰주는 빛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역사 속에서 내가 가지는 의미를 조금씩 알아가면서 우리의 자아는 조금씩 확장 될 것이다.
  
2005. 3. 14 교회사의 이해를 들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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