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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예배에 참석하길 잘 한 것 같다. 전날 밤, 두려운 내 미래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었는데 예배를 드리고 나서는 마음이 후련했다. 살면서 처음으로 하나님의 존재가 느껴졌다. 함께 하실 거라 믿는다.”

 

2002년 1월 6일... 그러니까 2년 전의 오늘 쓴 일기이다. 부끄럽지만 이것이 하나님과 나와의 첫 만남이었다. 1월5일 저녁, 잠을 자려고 누웠는데 잠이 오질 않았다. 내 지난날과 앞으로 다가올 일들에 대한 생각이 밀려왔다. 애써 다른 생각을 하려 했지만 벌써 내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너무 답답했다. 어떤 뚜렷한 목표도, 기억할 만한 추억도 없었다. 중학교 3년, 고등학교 2년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 내게 남은 건 꿈을 포기해야만 했던 아픔과 내 자신에 대한 지독한 불신 그리고 미래를 향하는 두려움뿐 이였다. 그때까지 하나님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크리스천이라는 것을 하나의 떼어내고 싶은 명찰로 여기던 나에게는 당연한 일이었다. 고2때에는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하려고 노력했다. 대학이라는 곳에 왜 가야 하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하겠다는 목표도 없었지만, 그냥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가려는 대학에 가고 싶다는 어린애 같은 생각 하나로 열심히 공부했다. 성적도 조금씩 오르기 시작했다. 한 때는 나도 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점점 내 가슴속에 밀려오는 회의와 좌절감을 막을 길이 없었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악순환... 허무주의에 빠져버린 열여덟 살의 젊은이보다 불쌍한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 시절 “내가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본즉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라는 성경 구절이 가슴 깊이 와 닿았다. 솔로몬이 뭘 알긴 아는구나 하는 바보 같은 생각도 했다.

 

이런 내가 하나님을 처음 만났을 때의 감격은 글로 표현 할 수가 없다. 어둠 속에 서 한줄기 빛을 본 기분이었다. 그 날 이후로 예배 시간마다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옛날 같으면 그냥 졸았을 지루한 말씀이 내 가슴에 박혔고,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부르던 찬송이 내 간증이 되었다. 그 전에는 별로 없었던 회개 거리가 갑자기 넘쳐 나서 회개 기도를 할부로 하면 안 되나 하는 생각도 했다.

 

첫 만남의 감격 이후 난 조금씩 바뀌었다. 내가 바꾼 것이 아니라 나도 모르게 바뀌어져 갔다. 한숨만 푹푹 쉬고 살아가던 내가 새로운 목표를 가지고 열심을 품게 된 것이다. 새로운 목표는 두 가지 였는데, 첫 번째는 성경말씀 듣고 보면서 하나님을 더욱더 알아가는 것, 두 번째는 의대에 진학해서 전인적인 치료를 하는 의사가 되는 것이었다. 이것은 지금도 계속 되는 나의 목표이다. 기도로 하나님께 매달렸다. 매일매일 QT시간도 가지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 모든 것을 다해 열심히 공부했다. 그리고 힘든 고3생활을 약에 취한 사람처럼 즐겁게 보내고 수능시험을 쳤다. 이 이야기의 진행으로 봐서 하나님의 은혜로 의대에 합격해야 “아멘”이라는 말이 나올 것이라는 것을 안다. 내 자신도 그랬으니까. 하지만 난 3등급이라는, 내 목표 근처에도 못 가는 성적을 맞고 재수를 하게 되었다.

 

그 때 내 동생이 한 말이 생각난다. “형! 가족끼리 모여서 그렇게 간절히 기도 했는데, 왜 안 돼? 이럴 때는 난 하나님이 안 계시는 것 같아.” 내가 묻고 싶은 말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그렇게 하신 것이 정말 감사하다. 10개월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값진 것은 수학 문제 몇 개 더 풀 수 있게 된 것이 아니라, 재수하면서도 좋은 목사님을 만나 신앙적으로 많이 성장했다는 것이다. 그 시간 동안 내 목표도 조금씩 바뀌었다. 아직 준비되지 않은 내가 과연 내가 원하는 의사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의학전문대학원으로 가는 진로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졌다. 대학교 4년의 시간동안 신앙적으로 그리고 지적으로 더 성숙해져서 그 힘든 공부들을 소화 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다음에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기도했다.

 

그 기도의 응답이 지금 내가 가는 한동대학교이다. 내가 고민하던 것들이 이 학교를 통해서 깨끗이 해결됨을 보니 신기하게 느껴졌다. ‘내 작은 기도까지 들으시는 하나님 정말 감사합니다.’ 아직 2차 면접이 남았지만 하나님께서 날 그 곳으로 인도하셨음을 믿기에 난 그 학교 학생임을 벌써부터 말하고 다닌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잠언16:9) 아무렇지 않게 느껴지던 이 말씀이 이제 내 신앙 고백이 되었다. 내 생각으로 내 욕심으로 계획하고 꿈꾸었던 것들을 거두게 하시고 먼저 하나님 앞에 온전히 설 수 있도록 날 이끄신 것에 감사드린다.

 

도망치려 해도 놓지 않으시고 날 이끄시는 고집쟁이 하나님이 좋다. 소주 먹고 철야 예배 가서 화내고 대드는 나를 위로해 주시는 자상한 하나님이 좋다. 내 비밀스러운 기도를 은근히 다 들어주시는 경상도 스타일의 하나님이 좋다. 어린아이에게 칼을 줄 수는 없는 것이다. 난 지적으로나 영적으로나 아직 어린 아이라는 것을 지금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칼을 쥘 수 있는 사람이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그 칼을 주실 것이라 믿는다.

 

이제 나는 출발선에 섰다. 이런 나에게 글을 쓰라고 하니, 사실 쓸 것이 별로 없다. 있다면 지난날의 내 부끄러운 모습과 2년 동안의 간증 같은 내 삶뿐이다. 그래서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내 이야기를 쓴 것이다.

 

마지막으로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우리는 흔히 꿈과 비전이라는 말을 많이 듣고 또 많이 한다. 하지만 거기에 대해 깊이 생각하면서 고뇌하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이 슬픈 현실이다. 젊은이들에게 비전은 생명만큼 귀중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비전 없는 젊음은 아무 가치도 아무 의미도 없으며, 그 젊음의 노력과 희생은 솔로몬이 헛되고 헛되다고 말한 대상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내 머리에서 나온 생각이 아니라 내 체험이자 쓴 뿌리이다.

 

사명은 하나님의 뜻 그리고 사명을 만난 꿈을 비전이라고 한다. 이루어진 일을 보는 것. 그것은 우리의 자신감과 배짱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하심에 대한 응답과 확신에서 오는 것이다. 그러니까 비전을 품으려면 먼저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우선이다. 만나지 못했다면 간절히 찾아야 한다. 영적인 갈급 함 없이 하나님을 찾는 것은 찬양 없는 철야 예배와 같다.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 헤매듯이... 이런 갈급함이 있어야 말씀의 은혜가 있고, 찬송에 기쁨이 있다고 생각한다. 가끔 교회에서 소중한 시간을 뚜렷한 비전 없이 하나님 안에서 자족하며 살아가는 겸손한 선배들 그리고 후배들을 본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단지 게으른 것일 뿐이다. 왜 기독교가 세상에서 많은 비난을 받는가? 그것은 물이 포도주가 되고 죽은 사람이 다시 사는 비과학적인 사실 때문이 아니라 새 생명을 얻었다고 시인하는 나와 여러분들의 죽은 삶 때문이다. 크리스천의 향기를 나타내는 삶이 되기를 기도한다. 내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를 소망한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욥기 23:10)

 


2004. 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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