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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환자의 마지막 일주일

70대 여자 환자였다. 그분은 2년 전 산부인과에서 난소 양성 종양을 떼어냈다. 그런데 몇 달 뒤 촬영한 CT에서 수술 부위에 뭔가가 보였다. 영상의학과에서는 수술 후 체액이 고여 있을 가능성이 크지만 양성 종양이 악성으로 변해 재발했을 가능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담당 교수님은 자신이 지금껏 의사 생활하면서 이 순한 녀석이 재발한 경우는 본 적이 없다, 더군다나 이렇게 빨리 CT에 보인다는 건 말이 안 된다며 재발 가능성은 없다고 하셨단다. 6개월 후 다시 CT를 찍었을 때는 그 병변이 더 커지지도 작아지지도 않고 그대로였지만, 6개월 후 다시 찍은 CT에서는 그 크기가 좀 더 커졌다. 그래서 3개월 후 다시 한번 CT를 찍어보고 향후 계획을 세워보자는 이야기를 듣고 병원을 나섰다.

한 달 뒤 이 여자분은 호흡곤란으로 응급실로 오셨다. CT를 찍어보니 원발부위를 알 수 없는 악성종양이 폐, 심장에 퍼져 있었다. 우선 내과에 입원해서 증상 조절을 시작했다. 그러던 중 극심한 복통을 호소하여 산부인과와 외과가 함께 수술방에 들어갔다. 골반 부위에 종양이 발견됐는데 산부인과 교수님은 그 병변의 조직검사를 거부했다. 그리고 이전 수술의 재발이 아니라 대장에서 기원한 종양인 것 같다며 추후에 다시 수술하는 방향으로 하자며 배를 닫았고, 이후 회복을 위해 외과계 중환자실에 입실했다.

중환자실 담당 교수님은 먼저 산부인과 교수님의 의견에 떠밀려 조직검사를 하지 않았던 외과 선생님을 질책했다. 그리고 이 환자는 이전 수술의 재발 가능성이 높고 전신으로 퍼져 수술적인 치료도 불가능하니 우리가 더 해줄 것은 없다, 빨리 깨워서 인공호흡기를 제거하고 산부인과에 넘기라고 하셨다. 그런데 환자의 전신 상태가 안 좋아서인지 발관 후 금세 숨쉬기 어려워하면서 인공호흡기를 다시 달아야 했고 그 상태인 환자를 내가 담당하게 됐다.

당시 중환자 담당 교수님과 나는 사이가 극도로 좋지 않았다. 그 일이 있기 얼마 전, 강압적인 교육방식에 참다못한 나는 교수님을 찾아가 솔직한 심정을 말씀드렸다. 교수님은 무척이나 언짢아하시며 이 상황의 원인은 자기애가 강한 나 때문이라고 혼내셨지만, 인력이 부족한 상황이라 나를 당장 그만두게 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그만두고 싶은데 못 그만두는 나, 그런 나를 내보내고 싶은데 내보낼 수 없는 교수님의 갈등은 하루가 다르게 깊어지는 상태였다.

회진 때 그 환자의 담당이 나라는 걸 알게 된 교수님은 공격적인 어조로 이렇게 이야기하셨다. “정.규.성. 이 환자 깨울 생각하지 마. 다시 한번 말하는데 절대 깨울 생각하지 마. 포폴(진정제) 용량 더 올리고 빨리 산부인과 넘겨”

교수님께서 어떤 의미에서 내게 그런 지시를 내리셨는지는 충분히 이해가 갔다. 질병의 경과를 이기지 못하고 죽음의 과정으로 넘어가는 환자를 조금이나마 좋아지게 해보겠다고 애쓰는 것. 어쩌면 그게 환자를 더 힘들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환자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우선 산부인과가 이 환자를 받으려 하지 않았다. 받게 되면 병동으로 환자를 옮겨야 하는데, 환자의 악화 원인도 난소종양의 재발이 아니라고 하는 상황에서 인공호흡기까지 달고 있으니 받을 리 만무했다. 그리고 더 문제는 환자의 의식이 생각보다 명료해 보였다는 것이다. 환자를 더 깊게 재우기 전에 포폴 용량을 잠시 낮추고 환자의 의식상태를 파악했는데 생각보다 의식이 양호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환자라면 이렇게 잠이 든 상태로 서서히 죽어가는 걸 원하지 않을 것 같았다. 보호자도 마찬가지고.

한참을 고민하다가 보호자에게 선택권을 주기로 했다. 먼저 산부인과 교수님을 설득했다. 환자가 병동에 올라가도 중환자 파트에서 환자 상태를 봐주겠다고 하니 그제야 환자를 인계받았다. 끝까지 본인들이 책임지지 않으려 하는 모습에 화가 났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라도 환자가 그쪽으로 넘어가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아마 우리 파트에 있었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했을 테니까. 그리고 환자가 병동에 올라간 후 보호자를 만나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환자가 여기까지 오게 돼서 보호자분들이 화나고 속상하신 거 충분히 이해합니다. 제가 상황을 다 알지는 못해서 조심스럽지만… 아마 저라도 그랬을 것 같아요. 마음에 맺히시는 것들이 있으면 담당 교수님 찾아가서 얼마든지 불만을 이야기하셔도 됩니다. 당연히 그럴 만 하니까요.”

“다만 지금 이 상황에서 그게 해결책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건 어머니와 보호자분들이 최선의 선택을 하도록 돕는 겁니다. 두 가지 선택이 있습니다. 하나는 지금 이 상태로 쭉 가는 겁니다. 완전히 깊게 잠든 상태고 통증 조절도 하고 있어서 많이 힘들지는 않으실 거예요. 이렇게 몇 주를 버티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보호자 분들과 눈 마주치고 의사소통하고 작별 인사할 시간을 가질 순 없습니다.”

“다른 선택은 약을 줄여서 우선 어머니를 깨워보고 만약 의식이 또렷하게 깨고 호흡도 양호하면 인공호흡기를 떼는 겁니다. 병이 해결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결국에는 다시 숨쉬기 힘들어질 거예요. 그게 반나절 뒤가 될지, 하루 이틀 후가 될지, 일 이주가 넘어갈지는 저도 모릅니다. 아마 그렇게 길지는 않을 거예요. 확실한 건 인공호흡기를 달고 있는 것보다 빨리 돌아가신다는 거겠죠. 그 대신 남은 시간을 온전히 깬 상태로 가족 친지들과 대화도 나누고 작별 인사도 하면서 보내실 수 있을거에요. 정답이 있는 게 아니니까 가족들과 상의해보시고 알려주세요.”

가족들은 후자를 선택했다. 예정대로 약을 줄이고 의식과 호흡 상태를 확인한 후 발관을 했다. 환자는 생각 이상으로 의식이 명료했고 발관 후 한두시간 지나자 가족들과 대화를 나누셨다. 그 후 수시로 그 환자병실을 찾아가서 상태를 파악하고 퇴근하고도 챠트를 확인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사흘이 지나고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다. 그동안 가족, 친지, 지인들이 그 병실에 수시로 오갔고 그곳에서 함께 웃고 울었다. 그리고 8일째가 되자 환자분의 호흡이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보호자에게 말씀드리고 진통제와 진정제 용량을 올렸고 그렇게 조용히 잠이 든 상태로 다음 날 임종하셨다. 가족들의 손을 잡고 편안한 얼굴로…

의사는 환자가 어떻게 살지 죽을지 결정할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의사는 환자에게 가능한 선택지를 보여주고 함께 대화하며 환자가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다. 하지만 이런 우리가 알게 모르게 환자가 죽어가는 모습과 방식을 정하고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무거웠다. 환자를 살리기 위해서는 치열하게 토의하고 병원 이곳저곳을 뛰어다니고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면서도, 환자와 보호자가 조금은 덜 아플 수 있는 죽음에 대해서는 왜 이야기 나누지 못하는지. ‘살릴 수 없다’라는 것이 왜 ‘더 이상 해줄 것이 없다’가 되어버리는 건지. 그렇게 죽어가는 것이, 그렇게 이별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 되어버리는 건지.

오늘 당직을 서면서 한 번의 임종 선언을 했고 여러 명의 말기 암 환자를 보았다. 해줄 것이 없다는 나의 좌절감과 무력감이 이 환자들이 어떻게 죽을지를 결정하려는 그 순간, 그 환자를 생각한다. 그 환자가 가족과 보낸 마지막 일주일을 생각한다.

2023.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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