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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다. 주치의의 삶. 보람도 있고 힘들기도 하고. 많은 것을 느끼게 하는 시간이다.

환자들이 웃을 때만큼 기분 좋을 때가 없다. 심각해져 있는 환자와 보호자가 웃기 시작할 때 잠시나마 고통이 사라지고 고통 너머에 있는 것들을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기기 시작하는 것 같다.

어제는 DNR을 처음 받아봤다. 할머니는 어제까지 동공이 pinpoint 였는데 오늘 아침에 보니 다 열려 있으셨고 어떠한 자극에도 반응이 없으셨다. CT를 찍었고 곧 올라온 할머니의 퉁퉁 부어있는 뇌를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기계 환기를 잘 모르면서 조절해서일까. 써야 하는 약이 있었는데 안 써서 그런 걸까. 뭘 어떻게 해도 어쩔 수 없을 만큼 안 좋았던 환자였지만, 살 수 있는 작은 가능성을 내 무지로 막아버린 건 아닐까. 그런 생각 때문에 마음이 괴로웠다.

어제까지는 그렇게 가면 안된다고 울부짖던 보호자가 오늘 아침에 와서 "엄마 좋은 곳으로 가. 거기서 만나." 이렇게 이야기하는데 눈물이 나는 걸 억지로 참았다. 하루 동안 얼마나 많이 우셨을까. 지난달에도 비슷한 증상으로 오셔서 며칠을 중환자실에 계시다가 깨어났던 엄마였는데. 이번에도 그렇게 다시 돌아올 줄 알았는데. 이렇게 작별 인사도 없이 떠나버리다니.

며칠 전에 응급실에 왔을 때 병원에서 입원시켜 줬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내가 깜빡 졸지만 않았어도 엄마가 숨을 못 쉬고 있었다는 걸 금방 발견했을 텐데. 누군가를 원망하다 결국 자신을 원망하고 그러다 지쳐 또 울고 울고 또 울고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면서 그 긴 밤을 대기실에 웅크리고 누워서 보내셨을까.

환자는 포기하지 않았는데 내가 먼저 포기했던 것은 아닐까. 그런 마음이 들어서 죄송하기만 하다. 그런 내게 "의사 선생님 우리 엄마를 살려주세요"라는 말을 하시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나 또한 기적만 바라고 있다.

2016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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