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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제는 Mercy Ships crew & day worker들과 함께 축구를 했다. 지난 주에는 뛰다가 죽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는데 이번에는 죽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여전히 몸이 내 생각대로 움직여지지가 않는다. 운동장을 뛰고 있는데 마치 재활훈련을 받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오늘은 eye screening을 다녀왔다. 이번에는 지난 번 보다 훨씬 먼 지역으로 갔다. 새벽 4시에 출발해서 한 시간 정도 시골길을 달려서 로컬병원에 도착했다. 선발대 인원이 별로 없어서 조금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사람들이 지난 번처럼 많지는 않았다.

새벽 5시가 좀 넘으니 "계란이~ 왔어요~"와 비슷한 스타일의 방송이 들려왔다. 이 아침부터 뭘 저렇게 파나 싶었는데 알고 보니 이슬람 교도들의 기도시간을 알리는 소리였다. 클리닉의 마당을 쓸던 아저씨도 하던 일을 멈추고 내가 있는 방향으로 절을 하기 시작했다. 난 황송해서 얼른 그 자리를 떠나 마당 한 구석에서 아침으로 싸온 빵을 동네 고양이들이랑 나눠 먹었다. 그러다 보니 조금씩 아침이 밝아져왔다.

사람들이 더 모이기 시작하고 선별작업이 시작되었다. 이번에도 백내장 말고 다른 질환으로 온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지난 번에 그런 사람들을 그냥 돌려 보내는 것이 맘 아팠는데, 이번에는 그 사람들을 따로 분류해서 환부의 사진을 찍고 신상정보를 받았다. 피드백을 거치면서 스크리닝을 할 때마다 이렇게 조금씩 발전해 나가는 것 같다.

 

2.

오늘은 기억에 남는 것이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Hypospadias를 가진 아이를 본 것이다. 한 아버지가 귀엽게 생긴 남자아이를 안고 지나 가길래 "봉주르(안녕)" "꼬모싸바(How are you?)" 그랬는데 아버지가 대뜸 악수를 청하고는 아이의 바지를 벗겨서 거기를 보여줬다. 첨엔 당황해서 탈장인가 피부병인가 그랬는데 가만히 보니 해부학 책에서 봤던 Hypospadias였다.

이건 쉽게 말해 소변이 나오는 곳이 성기의 아래쪽 쌩뚱 맞은 곳에 나 있는 질환이다. 선진국에서는 대부분은 이 질환을 돌이 되기 전에 외과적 수술로 성공적으로 치료하는데 여기서는 그게 안 되니까.. 아버지가 안타까운 얼굴로 아이의 바지를 올리는데 어깨를 토탁이며 미안하다는 말 밖에는 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암튼 고맙다고 웃으며 가는데 맘이 짠했다.

 

3.

또 다른 일은 한 아주머니에 대한 것이다. 향수를 뿌리고 옷을 멋지게 입고 나타난 젊은 군인이 출근길에 어머니와 여동생을 모셔다 주고는 내게 부탁을 하고 갔다. 그런데 그 어머니는 백내장이 아니라 걷는 것에 문제가 있었고 Mercy Ships에서는 주로 어린아이들을 외과적으로 교정해 주기 때문에 도움을 줄 수가 없었다. 그래도 그냥 돌려 보내기가 미안해서 이리 저리 다른 아픈 곳이 없는지 물어 보다가 한 쪽 눈에 경미한 백내장이 있는 걸 알게 됐다. 그리고 이도 안 좋은 것 같아 담주에 있는 dental screening 날짜를 알려 드렸다.

그 아주머니는 딸과 함께 한참을 줄을 서서 기다리시다가 일차 스크리닝을 통과하고 진료소 안으로 들어갔다. 난 밖에서 일하다가 한참 지나 진료소 안으로 들어가보니 아주머니가 진료를 마치고 안약통과 백내장 예방과 관련된 종이를 들고 계셨다. 여기는 워낙 백내장이 심한 사람이 많아서 아주머니가 수술 대상자에 들어갔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그 아주머니는 이미 다 나은 것 같은 얼굴로 날 부르고는 울먹이시면서 몇 번이고 고맙다고 그러셨다. 그리고 작게 접은 꼬깃돈을 손에 쥐어 주시길래 괜찮다고 말씀드리고 한 번 안아 드렸다. 말 한마디 안 통해도 진심은 통하나보다.

 

4.

마지막 한 가지는 그 클리닉 바로 옆에 있는 학교를 구경한 것이다. 불도 잘 안 들어오는 교실에서 아이들이 열심히 손 들고 발표하고 웃고 떠드는 모습을 보았다. 선생님도 열심히 칠판에 불어를 적으면서 뭔가를 가르치고 있었다. 즐겁고 활기찬 그 교실 분위기를 보고 있는데 그냥 내 머리속에 "희망"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이 아이들이 오늘 스크리닝을 온 아저씨 아주머니의 너무나 사랑하는 아이들이구나. 이 아이들이 한 가정의 웃음이고 이 나라의 미래이구나. 학교를 둘러 보면서 말로 표현하기 힘든 새로운 힘과 가능성을 느꼈다.

이렇게 길고 길었던 오늘 하루가 갔다. 아 한 가지 더 있구나. 저녁에 한국계 호주의사인 Joseph Park 선생님과 communication 부서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들, 그리고 인우와 Arne와 한국식당에 갔다. 오늘따라 음식이 참 맛있었다. 특히 김치가..

피곤해서 더 못쓰겠다.

 

2012. 10.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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