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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교회로 가는 길에 문득 옛날 생각이 들었다.

 

난 7년 전 빡빡머리를 하고 재수생의 신분으로 그 교회를 출석했었다. 예배 때마다 얼마나 큰 은혜를 받았었는지! 남 보기 민망할 정도로 울음이 터질 때가 많았다. 그렇게 한참을 훌쩍거리며 기도하고 나면 예배당은 텅텅 비어 있었고. 지금 생각해보면 하나님께서 초신자였던 내 마음을 특별히 만지신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난 분명 금새 어딘가로 도망가지 않았을까. 어쨌든 난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왠지 모를 따뜻함을 느낀다. 이 교회에 가면 첫사랑의 추억이 담긴 장소를 다시 찾아간 느낌이 들 정도다.

 

그런데 지금 돌아보면 그때 그 믿음이 얼마나 철부지 어린아이 같았는지. 난 참된 믿음보다 다른 것에 관심이 더 많은 아이였다. 그분을 간절히 만나고 싶어하긴 했다. 그러나 그 간절함의 시작은 그분이 상처 투성이었던 나를 회복시키실 수 있을 거 같았고, 그래서 내가 좀 더 멋진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혹시 또 아나? 기적을 일으키셔서 나를 의사로 만들어 주실지도? 그분은 전지전능하고 사랑이 넘치시는 내 인생의 도우미였다. 난 그 기반 위에서 아름다운 믿음의 집을 멋지게 지어나갔다.

 

어찌 보면 지난 7년의 시간은 그 집을 허물고 다시 세우고를 반복했던 시간이었다. 내 믿음의 시작이 내가 아닌 예수님께 옮겨지는 그 과정은 정말 괴로웠다. 내가 지었던 아름다운 집들은 계속해서 무너졌고 그때마다 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인간이 진정으로 밑바닥으로 내려가면 예배하거나 자살하거나 둘 중 하나다”라는 한 수사의 고백이 얼마나 공감되는지. 그렇게 몇 년을 'spiritual schizophrenia’에 시달리며 살았다. 끝없는 터널을 기어서 나가는 기분이었다. 내 영혼은 옛사람과 새사람의 전쟁터였다. 그런데 그 힘 싸움이 어느 순간부터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하더니 황무지에 장미꽃이 피어 나듯 내 영혼에 다시금 빛이 비취기 시작했다.

 

빛 가운데로 나오게 되니 난 아주 낯선 자리에 서 있었다. 지금까지 많이 들어는 봤지만 희미하게 만 경험했던 그 곳. 이 자리는 죽음이 삶과 만나는 곳이다. 절망이 희망과 만나며, 지독한 부정이 더 지독한 긍정과 만난다.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존재가 가장 거룩한 분과 사랑 안에서 뒹군다. prodigal son을 사랑하는prodigal Father을 만나며, 세상에서 사랑할 사람이 나 하나 뿐인 것처럼 사랑하시는 그분과 바로 이 곳에서 만난다. 이 이해할 수 없는 모순은 십자가를 통해 신비로 바뀌고, 놀라운 은혜의 자리에서 '하나님에 대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조금씩 알아가는 그 기쁨이 내 안에서 싹트기 시작한다.

 

믿음이 있다 생각하고, 그분을 사랑한다 생각했는데 난 이제서야 시작인 것 같다. 이 사랑은 예수님을 다시 만난 베드로의 마음에서 솟아 올랐던 고백과 비슷하지 않을까. 예수님 그 분을 만나고 싶다. 다른 어떤 이유에서가 아니라 예수님이 예수님 이시기 때문에 만나고 싶다. 더 알고 싶고, 닮고 싶고, 내 모든 것을 다해 사랑하고 싶다.

 

 

201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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