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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품..." 

 

1년 전 어떤 책을 읽다가 어머니의 품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요즘 들어서 이 어머니의 품에 대해 많은 생각이 든다.

 

내 모습 그대로가 받아들여지는 느낌, 난 소중한 존재이고 내가 있는 이곳은 안전하다는 느낌. 내게는 언제였을까? 이 물음에 자신 있게 대답하지 못하는 나... 받아들이기 쉽지 않지만 나는 이런 경험을 거의 해보지 못한 것 같다. 대학생이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어린 시절 하면 나는 많이 맞았던 기억이 난다. 잠언에 자식을 바르게 키우기 위해 죽지 않을 만큼만 때리라고 나와 있다지만, 난 정말 지나치게 많이 맞으면서 컸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아버지의 부재라고 생각한다. 아버지께서 늦게 공부를 하셨기 때문에 주말에만 집에 오셨고 그래서 집안의 가장 역할을 어머니께서 감당하셔야 했었다. 지독한 가난과 자식 교육의 짐을 어머니 혼자 지시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고, 그래서 그런지 나는 푸근하고 여유 있고 안전한 어머니의 품 보다는 엄격함과 책임감과 자립심을 강조하는 부성적인 품속에서 자랐다. 어머니께서는 그때 이야기가 나오면 ‘가난한 집에 자식 하나 키우는 거 예의 바르게 잘 키워야 한다는 부담감에 지나치게 엄격하게 키운 것 같다’고 말씀하신다. 

 

이런 성장 배경 때문에 나는 누구보다도 자립심이 강하고 생활력이나 적응력이 좋다. 그것은 여전히 내게 있어서 큰 은사라 생각한다. 하지만 자라나는 아이에게 안정감을 주고 뿌리 깊은 자존감을 키워주는 ‘어머니의 품속’을  (거의) 경험해 보지 못하고 자랐기 때문에 내가 가지게 된 문제들도 있다. 그리고 그 문제들이 가끔씩 심각한 고민거리가 되기도 한다.

 

그 예로 나는 내 진짜 모습이 다른 사람에게 드러나는 것이 두렵다. 그래서 누군가가 나에게 조금씩 가까이 다가올 때 겁을 먹고 피하게 된다. 그리고 난 내 감정을 깊게 들여다보는 것이 익숙하지가 않다. 나 자신의 진짜 속마음을 들여다보고 드러내는 것이 뻔히 보이는 거짓말을 하는 것 보다 더 힘이 든다. 또 다른 이에게 인정받기 위한, 사랑 받기 위한 조건들을 만족시키는데 지나치게 신경을 쓰게 되고, 그래서 그런지 자주 불안하고 긴장이 된다. 무조건적인 받아들여짐을 경험해 보지 못했기에 다른 사람들의 칭찬과 인정으로 나 자신을 확인하려고 하는 것 같다. 하나님과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무조건적인 받아들여짐이 아직도 낯설고 거북하다. 나 자신을 그 품에 던지기가 늘 망설여진다.

 

내가 크리스천이 되고, 대학생이 되고 나서 이런 나를 두려움 없이 오픈 할 수 있는 소중한 형을 만나고, 나를 있는 그대로 가치 있게 봐주는 친구들을 사귀고 그리고 부모님과의 관계가 점차적으로 회복되면서 “어머니 품”에 대한 내 갈급함도 조금씩 채워지고 있음을 느낀다. 정말 많이 회복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린 시절에 생긴 그 빈 공간이 쉽게 채워졌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나를 속이는 일일 것이다. 어린 시절 내가 경험하지 못한 “어머니의 품”에 대한 갈급함. 그 상실의 경험은 쉽게 채워질 수 있는 공간이 아닌 것 같다.

 

이런 문제들이 여전히 내 안에 남아있는데, 하나님께서는 이런 내게 사랑해야 하는 사람들을 붙여 주셨다. 사랑하는 울타리 아이들, 소울 사람들, 농아인 등등. 그리고 내게 말씀하시는 것 같다. 이 사람들에게 '어머니의 품'이 되어 주라고. 

 

쉬운 일이 아니다. 전역을 하고 점점 더 치열해지는 삶 속에서 고슴도치 같은 영혼들을 가슴으로 꽉 껴안는 일이 쉽지가 않다. 아니,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우리의 인생 과업 중에 가장 어려운 마지막 시험이다. 다른 모든 일은 그 준비 작업에 불과하다”는 릴케의 말처럼 다른 무엇보다도 힘든 일이다. 이들을 사랑하려고 할 때 마다, 내 교만과 이기심이 머리를 들고 누군가에게 받은 상처들이 다시금 터진다. 이런 내 모습을 보면서 움츠려든다. 

 

그런데 참 감사한 것은 내가 이 사람들에게 어머니의 품이 되어 주고자 할 때.. 내 모습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고자 할 때, 하나님께서 다른 어느 때 보다 더 큰 따뜻함으로 내게 다가오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분의 사랑으로 사랑하게 하시고, 동시에 더 사랑하지 못하게 만드는 내 상처와 두려움들도 하나 하나 만져 주신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어머니 품'을 찾아 헤매이고 있는 것 같다. 무조건적인 받아들여짐, 다시 말해 '은혜'를 경험하지 못해 받은 상처들이 너무나 크다. 그리고 그 상처를 외면하기 위해(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이곳 저곳을 배회하며 의미 없는 무언가에게 자기 자신을 내던지려고 한다. 무조건적인 사랑을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기에 그런 사랑을 외치는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한다. 

 

그런 사람들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옆에 있음을 발견할 때 마다 가슴이 아프고 마음 속에 거룩한 부담감이 생긴다. 이 부담감을 피할 수는 없는 것 같다. 그 부담감을 피하는 그 순간 내 신앙은 거짓이 되기 때문이다. 또 내 삶의 이유 되시는 주님께서 오늘도 내게 가장 따뜻한 '어머니의 품'이 되어 주시며, 그들을 두려움 없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족하지만, 그래도 사랑하련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요일 4:18

 

 

200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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