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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물을 펄 때는 그냥 무식하게 펌프질부터 하면 안 된다. 먼저 한두 바가지의 물을 퍼 넣고 시작해야 한다. 무슨 원리인지는 잘 모르겠다만 이 물 덕분에 새로운 물이 솟아 나온다.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 한 두 바가지의 물을 '마중물'이라고 부른다.

 

오늘 도서관에서 학생 두 명을 앉혀 놓고 열정적으로 이야기를 하는 분을 보았다. "신학" "신학" 하시는 걸 보니 아마 신학교 다니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과외를 하다가 지겹고 해서 그 사람이 하는 말을 유심히 들어보았다. 그러면서 사람의 경청이라는 것이 참 보잘 것 없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그분은 다른 이들의 말을 유심히 듣는 것 같았지만.. 실은 그게 아니라 다른 이들의 말을 자신의 말을 끄집어 내기 위한 '마중물'로 삼고 있는 중이었다. 대화하는 것 같았으나 대화가 아니었다.

 

그 모습 속에서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분은 열정적으로 많은 말을 했지만 내게는 그냥 시끄럽게만 들렸는데.. 어쩌면 내가 쏟아냈던 그 수많은 말들도 다른 이들에게 그렇게 들리진 않았을까. 그랬던 것 같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며 목에 핏대를 세우고 열정적으로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귀로 들어야 한다는 본회퍼 목사님의 말씀이 기억난다. 우리는 다른 형제의 입에서 나오는 말 뿐만 아니라, 그들 영혼에서 솟아 나오는 깊은 속삭임까지 들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그 영혼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줄 수 있을 것이고, 혼자만의 웅얼거림에서 대화로, 대화에서 진정한 교제로 나아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내 말이 그들의 진짜 말이 시작되게 하는 '마중물'이 되게 하는 것은 또 하나의 섬김이자 낮아짐인 것 같다. 내가 하는 말 한 두 마디가 한 사람의 내면에 갖혀 고여 썪고 있던 말들을 끄집어 낼 수 있고, 그렇게 시작된 대화가 한 영혼을 회복시킬 수 있다면,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는 마음써 들어야 하지 않을까..

 

사랑없이 말 할 수는 있지만 들어줄 수는 없다는 걸 많이 느끼게 된다. 그래서 내가 누군가의 말을 참으로 경청하는지 아닌지가 내 영적인 상태를 가늠해주는 바로미터가 될 수 있을듯 하다.

 

사랑이 있는 경청을 해야겠다고 다시 한 번 다짐한다. 난 너무 말이 많다. 그리고 사랑의 원천 되시는 예수님을 더 깊게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 사랑으로는 어림도 없으니까. 그리고 내일부터는 하나님께 드리는 내 기도도 그분께서 말씀을 시작하게 만드는 '마중물'이 되도록 하자. 분명 내게 하실 말씀이 많으실거다..
 

2008.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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