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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를 그냥 들으면 잘 모르는데 그 설교로 수화통역을 해보면 확실히 그 내용의 알맹이가 드러나는 것 같다. 오늘 통역을 하면서 정말 마음이 가라앉았다. 설교 내용을 잘 전달하지 못하는 내 수화 실력 때문이 아니라, 굳이 전달하지 않아도 될만한 내용이 많았던 말씀과 그 내용을 힘들게 전달해도 알아들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농아인들 때문이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사용했던 예화들이 건청인들에게는 몰라도 농아인들이 이해하기에는 너무 추상적이고 불명확했으며 자교회 중심적인 이야기들은 통역하는 내 마음부터 어렵게 만들었다. 농아인들이 계속해서 졸고 나중에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중심내용을 쉽게 쉽게 풀어서 설명해줬다. "여러분들의 신앙 생활에서 나쁜 생각과 습관 미워하는 마음과 시기 질투 같은 것들을 빼십시오. 사랑하고 나누고 섬기십시오." 이 말만 계속해서 반복했다.

 

정말 어렵다. 내가 알고 믿는 것들을 농아인에게 이해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신앙에 대한 이렇게 난해하고 추상적인 이야기들이 그들에게는 어떻게 느껴질까? 농아인들의 가장 큰 어려움인 언어의 빈곤은 필연적으로 사고의 빈곤을 가져오고, 사고의 빈곤으로 그들은 마치 철없는 어린아이처럼 살아가고 있는데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신앙생활의 어려움은 또 어떻게 도와주어야 하나? 글을 잘 못 읽고 읽어도 이해하지 못하니 말씀에 대해 무지하고 그들에게 다가가는 농아인 사역자도 그 어려움은 마찬가지이다. 성경을 잘 읽고 이해한 건청인 사역자라도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게 전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그리고 전해도 알아듣지 못하는 그들의 한계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예수를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보여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들이 보고 만지며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작은예수가 필요하다. 추상적인 신앙적 교리가 성육신하여 그들 가운데 머물러야 한다. 단순한 수화 통역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방언으로 그들과 소통해야 할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 그 사람이 내가 될 수만 있다면...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내게 주신 이 부담감을 저버리지 않겠다는 지금의 결심 잊지 말자. 그리고 나 자신부터가 내가 그들에게서 발견하고 싶은 그런 놀라운 변화가 되어야 한다.

 

 

2009.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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