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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검 받지 않은 삶은 가치가 없다.”라고 누군가가 말했습니다. 점검 받지 않은 꿈 또한 그렇겠지요. 제가 막연하게 의료선교의 소망을 가진지도 어느덧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런데 이 시간동안 주님께서는 “지금 네가 서 있는 곳에서 믿음으로 살라.”고만 말씀하시며 제 소망에 대해서는 침묵하습니다. 그러다 3학년 2학기가 되었고 본격적으로 진로를 정해야 하는 시기라는 생각이 들면서부터 제 마음은 조급해지기 시작했지요.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제 꿈은 아직 제 자신에게 조차 점검 받지 않은 꿈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의료선교사의 꿈을 오래 전부터 가지고 있었지만, 이 꿈을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인 적이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진로를 결정하기 전에 의료선교 현장을 잠시라도 돌아봐야겠다는 마음과 함께 <사랑의 왕진가방>을 통해 알게 된 단동병원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무작정 전화를 했는데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었고 저는 이곳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제가 단동으로 간다고 했을 때 무언가 큰 계획과 결심을 가지고 가는 것이라 생각하셨는데, 사실 저는 주님의 오랜 침묵에 투정하는 마음과 꿈만 꾸고 움직이지 않았던 제 게으름에 대한 반성으로 엉겁결에 이번 여행을 시작한 것이었죠.

 

 

월요일

단동병원으로 향하면서 제 눈에 들어왔던 풍경은 특별한 것이 없었습니다.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오는 굴뚝과 빨간 벽돌집을 빼고는 한국의 시골풍경과 매우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심양에서 단동방향으로 한 2시간쯤 달리다 우롱베이를 지나 몇 분을 더 가니 단동병원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오더군요. 병원은 제가 생각했던 것 보다 작았고 더 시골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도착하니 박은주 선생님께서 저를 친절하게 맞아주시고 숙소를 배정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점심시간에 박승철 실장님을 비롯해 여러 직원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첫 인상이 참 좋았습니다. 제가 한동대라는 사실이 그분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는 것 같았는데 내심 뿌듯한 마음도 들면서 한편으로는 내가 그런 기대감에 합당한 사람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답니다. 점심을 먹고는 병원생활, SAM의 사역 그리고 선교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현재 북한의 상황과 북한 사역에 있어서 단동시의 중요성 그리고 선교지로서의 중국은 어떤 곳인지에 대해 들으면서 막연하게 주워들은 이야기들이 정리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또한 실재 선교지 현장에 대한 이야기들과 “선교는 삶이다.”라는 도전은 계속해서 제 머릿속에 맴돌았습니다.  

 

 

화요일

단동에서의 첫 아침은 예배로 시작되었습니다. 묵상한 말씀은 요한복음 11장이었는데 한 분 한 분 나누실 때마다 새롭게 깨닫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저는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고 말씀하셨을 때 마르다가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나실 줄을 아나이다”라고 대답한 본문을 묵상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지금’이라고 말씀하시는데 ‘나중’이라고 대답하며 제 믿음의 부족함을 덮어두려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요. 이런 생각을 하면서 주님께서 오늘, 지금, 바로 이곳에서 나를 변화시키시길 원하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단동병원에 있는 시간이 비록 짧지만 주님께서 나를 만지시기에는 충분하다는 생각 또한 주셨구요.

아침에는 조금숙 선생님과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러면서 예전에 소식지를 통해 알게 된 물댄 동산 사역이 무척이나 귀한 사역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께서 사역지로 오게 된 과정을 들으면서는 선교에 있어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 것인지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선교에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의학뿐만이 아니라 신학과 상담도 배우려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선교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깨끗한 그릇이 되어 우리를 통해 “그리스도가 대신 말하게 하는 것.”이라는 도전 앞에서 ‘선교를 위해’라는 이름 뒤에 숨어있는 제 욕심과 교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대화가 끝나고 오전 오후 1시간씩 경추를 다쳐 몸이 굳어져 있는 ‘후청요우’ 아저씨를 주물러 드렸습니다. 굳어진 손과 다리를 풀어드렸는데 생각보다 힘이 많이 들었고 불쾌한 냄새도 계속해서 제 코를 찌르더군요. 하지만 환자에게 직접적으로 뭔가 도움이 되고 있다는 생각에 기쁜 마음으로 물리치료를 해드렸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환자들을 씻기고 물리치료를 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말을 들으면서, 거창한 일이 아닐지라도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 있고 그 일을 통해서 선교가 이루어 질 수 있다는 생각 또한 가지게 되었습니다. 의사가 물리치료사 보다 더 크게 쓰임 받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은 내 손을 잡아주시며 웃으시는 그분의 모습을 보면서 크게 도전 받았습니다. 
 

수요일

 

수요일 아침은 물댄 동산 사역에 동행했습니다. 제가 방문한 분은 까오칭롱 아주머니신데 종종 신내림을 받고 사람도 치료하는 분이셨습니다. 중국 무당이라는 생각에 약간 긴장했었는데, 실재로 만나보니 친근하기만 한 분이시더군요. 신을 믿으려면 더 큰 신을 믿으라는 조금숙 선생님의 말씀에 약간은 멋쩍어 하시며 하나님을 안다고 대답하시는 그분 모습을 보면서, 그분을 통해 그 지역이 복음화 되기를 기도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조금숙 선생님께서 ‘용서’에 대한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선교지에서 가장 많이 도전 받는 부분이 그 부분이라는 말씀을 하시며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해 주시더군요. 저는 그 말씀을 들으면서 제가 정말 때려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워하고 있는 동생 한 명이 생각났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도저히 이 사람은 용서하기 싫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서해야 한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이런 관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선교니 비전이니 이야기하는 제 모습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위선으로 보일까, 이번에도 나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회칠한 무덤이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구요. 그래서 찹찹한 마음으로 그 동생을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을 달라고 기도하면서 병원으로 돌아왔습니다.

점심을 먹고는 장철호 선생님과 대화를 나눴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의사가 되고 싶다면 상관없지만 선교를 위해 의사가 되려고 한다면 다시 생각해 봐라”시며 결국 선교는 도구로 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하는 것이라는 도전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제가 청각장애인과 함께한다는 것에 대해 정말 귀한 일이라며 응원해 주셨지요. 간간히 보여주시는 그 순수한 웃음이 보기 좋은 분이셨습니다. 대화가 끝나고는 101호 아저씨 물리치료를 해드리고 발을 씻겨 드렸습니다. 어제보다 많이 좋아진 모습에 보람을 느낄 수 있었고 주신 닭다리는 너무 맛있어서 방에서 혼자 먹었답니다.

저녁에는 수요 예배를 드렸습니다. 어쩌면 단동병원에 있으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시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예배 가운데 주님께서는 제 깊은 곳을 만지셨고 미운사람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을 달라는 제 기도는 용서받을 사람이 바로 저라는 기도로 바뀌었습니다. 죄송한 마음과 감사한 마음에 많이 울었던 것 같네요. 몇 달 동안 미움으로 굳어져 있던 제 영혼이 하나님의 은혜로 녹아서 부드럽게 된 시간이었습니다. 예배가 끝나고 미워서 쳐다보기도 싫었던 그 동생에게 미안하다는 편지를 썼는데 그러고 나서 정말 오랜만에 제 마음이 정말 평안해지고 자유해짐을 느꼈습니다.


목요일

목요일 아침에 묵상한 말씀은 요12:1-11이었습니다. 삼백 데나리온이나 하는 비싼 향유를 예수님을 발을 씻는데 써버린 마리아, 그런 마리아를 질책하는 가롯유다의 모습이 제게 강하게 와 닿았습니다. 사실 저는 올해를 시작하면서 ‘적당히 신앙생활 하자’는 마음이 많았습니다. 3학년 2학기가 되니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 같았거든요. 이상적인 뭔가를 좇기에는 부닥치는 현실의 벽이 너무 높아만 보였습니다. 제 앞에는 남은 대학 생활동안 껴안고 살아야 할 전공서적들이 쌓여 있었고, 주위를 돌아보면, 3,4학년이 되어 삶의 잔가지들을 치고 열심히 뛰고 있는 친구들이 보였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지난 몇 년간 함께한 농아인들과 그들이 출석하는 교회 그리고 제가 속한 동아리 후배들을 섬기는 일들은 현실의 벽 앞에서 과감히 정리해야 하는 잔가지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끝없이 들더군요. 

그런데 이 말씀을 잠잠히 묵상하면서 제가 ‘현실적’이라고 말하며 제게 맡겨주신 일들을 피하려고 했던 모습 속에서 가롯유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의 말은 겉보기에 합당해 보였고 또 그것이 예수님의 뜻을 이루는 길인 것 같아 보였지만 마음의 중심은 자신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바로 제 모습이더군요. 그리고 주님께서는 제가 그분을 ‘낭비’라고 느껴질 만큼 사랑하길 원하시는 것 같다는 마음 또한 들었습니다. 단동병원에 와서 의료선교의 꿈을 품고 그 마음으로 남은 시간을 적당히 신앙생활 하며 대학원 진학에 집중하려고 했던 제 숨은 계획은 그날 아침 이렇게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심지어 믿는 사람들에게 조차 낭비라는 말을 듣더라도 제게 붙여주신 사람들을 최선을 다해 섬겨야겠다는 결심을 했답니다. 

 

오전 오후에는 물리치료를 했습니다. 아저씨를 씻겨 드렸는데 씻겨 드리는 제가 기분이 좋았습니다. 물리치료도 상쾌한 마음으로 할 수 있었구요. 저녁에는 이근우 선생님과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분은 제게 끝없는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의료선교가 가장 좋은 도구라고 할 수 있는가?” “내가 어떤 도구를 준비한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과연 그것을 쓰시는가?” “사마리아인이 했던 것이 선교라고 본다면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들을 받으면서 지금까지 내가 선교에 대해 생각했던 많은 부분들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이니 이것만은 능동적으로 하고, 도구나 방법 같은 다른 문제들에 있어서는 수동적인 자세를 취하라는 말씀이 제게 와 닿았습니다. 또 선생님과의 대화를 통해서 농아인과 함께하는 일이 무척이나 귀한 일임을 느끼게 되어 참 감사했습니다. 
 

금요일 

금요일에 아침에 묵상한 말씀은 삼하19:24-3이었습니다. 혜림교회 담임목사님께서 무기력한 므비보셋이 다윗왕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아무것도 하지 못했지만 그 마음의 중심은 함께 했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우리 또한 북한을 향해 그런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도전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북한이 굶주릴 때 뭐했느냐?”라고 물으실 때 “하나님 제가 가만히 있지는 않았습니다.”하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이셨죠. 북한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오전오후는 혜림회사와 단동시를 둘러보았습니다. 병원에서 일만 하다가 돌아가려고 했던 제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었던 것 같습니다. 여러 장소를 갔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단교와 수풍댐이었습니다. 전쟁의 흔적이 남아있는 단교 위에서 그리고 너무나 가까워 손 흔드는 북한 주민들의 표정까지 보이는 배 위에서 합심기도를 했습니다. 저는 아직 그 영혼들에 대한 마음이 뜨겁게 생기지 않아서 그들을 향한 마음을 주시기를 계속 기도했습니다. 전쟁기념관에서는 역사는 언제든지 왜곡될 수 있다는 것과 중국이 북한에 가지는 영향력이 제가 생각하는 훨씬 크다는 걸 느꼈습니다. 중국이 북한의 어려운 상황과는 관계없이 북한에 대한 그들의 지배력을 유지하려고 한다면 통일의 가장 큰 걸림돌은 바로 중국이 되겠지요. 이런 관점에서 중국의 복음화는 우리나라의 평화통일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토요일

토요일 아침은 “발을 씻기신 예수님”(요13:1-20)에 대해 묵상했습니다. 저는 예수님의 피로 깨끗하게 되었지만 세상을 다니는 제 발을 수시로 더러워지고 그래서 날마다 용서와 영적인 정화라는 “발 씻음”이 필요하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 더러운 발을 씻기시기를 원하시고 계시다는 것이 참 감사했고 죄의 자백은 그런 예수님께 그저 제 발을 부끄럼 없이 내미는 것이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또한 제 발을 씻겨주신 예수님의 그 사랑을 경험했으니 저 또한 다른 사람의 죄와 허물을 그런 모습으로 용서해 주어야겠다는 결심을 하였습니다. 선교지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이런 지속적인 섬김과 용서가 아닐까요.
 

떠나면서

더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이러다가 마무리를 못할 거 같아서 그만 쓰렵니다. 예전에 선교지를 다녀간 누군가의 소감문을 읽으면 ‘저건 좀 과장이 아닌가?’ ‘포장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지금 제 글이 그런 느낌이네요. 제가 고개를 갸우뚱 했던 그런 글보다 몇 배나 더한 분량과 내용이 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정말 이곳에 있었던 일주일 동안 하나님께서는 제게 다른 사람이 보면 과장이라고 할 만큼의 은혜를 부어 주셨습니다. 오히려 글로 그 은혜들을 다 나누지 못해 아쉬울 다름입니다. 

단동병원에 있는 동안 끝임 없이 말씀하셨고 깨닫게 하신 하나님께서 올 한해도 늘 제 곁에서 함께 하실 거라는 확신이 듭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제가 풀지 못했고 풀기 싫었던 미움의 문제들을 해결하게 되고, 진로의 문제에서 눈을 돌려 하루를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에 다시금 집중할 수 있어서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저를 인도해주시리라는 믿음과 용기가 다시 생겼네요. 샘차이나 가족에게는 감사하다는 말 밖에는 할 말이 없습니다. 너무나 많은 것을 가져가는데 제가 드리고 가는 것은 없는 것 같아 여기 계신 선생님과 직원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많이 드네요. 이 미안함과 이곳에 와서 새롭게 가지게 된 중국과 북한에 대한 부담감을 가지고 ‘생각날 때’ 뿐만이 아니라 ‘생각해서’ 기도하겠습니다. 한분 한분 인사드리지 못해 너무 아쉽습니다. 모든 만남이 제겐 정말 소중했습니다. 
  
다시 만날 때 까지 건강하세요!
 

 

2009. 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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