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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죽었어야 했다. 나는 점점 더 물 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었고 해안가와의 거리는 점점 더 멀어져 갔다. 방금 전까지 웃으며 재밌게 놀던 우리가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6월 바다의 따뜻함은 잔인함으로 바뀌었고 그곳에 내 몸은 조금씩 녹아들어가고 있었다.

두려웠다. 전에는 한번도 느껴본 적 없는 순수한 두려움이었다. 그러나 이 두려움보다 더 크게 내 마음을 채워갔던 것은 속상함이었다. 혼자라면 금방이라도 헤엄쳐서 갈 수 있는 거리인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상황이 너무 억울했다. '나라도 사는게 좋지 않을까?' '두 명이 죽는 것 보다는 한 사람이 사는게 더 좋지 않을까?' 그러나 한 사람의 목숨이 천하보다는 귀하다는 진리 앞에서 사칙 연산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2-1은 0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용기가 아니었다. 내 오른손을 움켜 잡은 성민이를 구하겠다는 영웅스러운 용기가 있었다기 보다는 놓아버릴 용기가 없었던게 더 맞지 않을까. 놓았다가 혹시 살아 나오면 그것도 참 문제라는 생각이 그 급박한 상황에서 떠올랐다는 것도 참 재밌는 일이다. 뭐 현식이는 떠내려가면서 엄마가 집에 사 놓은 루이비똥 가방이 생각 났단다. 그거에 비하면 난 양반이다.

나와 성민이의 필사적인 몸부림은 계속해서 좌절되고 조금씩 시커먼 바다의 중심으로 떠 밀려갔다. 온 몸에 바닷물이 차 들어가는 것 같은 고통에 반응하기 바빠서 기도라기 보다는 '하나님..' 이 단어만 희미하게 부를 뿐이었다. 참 포시랍게 살았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죽는구나.. 인생 참 덧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결국 난 살았다. 어떻게 살았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거센 파도에 떠밀려가고 있었고 정신은 희미해져가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바다가 얕아졌다. 점점 더 땅이 발에 밟히기 시작했고 우리 둘은 조심스럽게 한발짝 한발짝 걸어서 해안으로 나왔다. 난 곧장 쓰러져서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그때의 기억은 한동안 잠잠했다가 최근들어 자주 내 머리 속에 떠오른다. 지금의 내 상황이 그때와 비슷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목표가 눈 앞에 보인다. 그리고 충분히 거기에 헤엄쳐 갈 수 이는 능력도 있는 것 같다. 주변 사람들도 날 그렇게 인정한다. 그런데 난 계속 그 자리에 맴 돌고 있고 내 양손에는 무거운 뭔가가 들려있다.

살기 위해 버려야 할 것과 죽더라도 잡아야 하는 것. 이 두 가지가 내 손에 들려있다. 목표 앞에서 좌절했던 경험들, 나 자신에 대한 불신, 좋지 않은 습관들.. 이런 것들을 버리고 싶은데 그게 참 안 된다. 반대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공부한다는 내 고백에 부끄럽지 않은 오늘을 사는 것, 진로의 압박에 눌려 신앙의 야성을 잃지 않겠다는 단호한 믿음의 결단은 지금 내가 꼭 붙잡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공부가 빠듯해지니 나도 모르게 우선 순위가 뒤바뀔 때가 있다. 또 이걸 잡고 있으면서 어떻게 내가 저기까지 헤엄쳐가나 하는 두려운 마음을 떨쳐버리기가 쉽지가 않다. 

하지만 다시금 마음을 다 잡는다. 살기 위해 마땅히 내려 놓아야 하는 문제들에서 자유케 하시고 내가 죽더라도 붙잡아야 하는 진리 앞에서 용기 주시길 기도한다.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도 주님의 은혜의 물결이 연약하고 무거운 내 삶을 사뿐히 들어 생명의 해안가로 인도해 주시길 기도한다. 날 살렸던 예기치 못한 그 물결처럼..

2010년 4월 어느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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