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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B(Birth)와 D(Death) 사이에 있는 C(Choice)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원하는 것을 선택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제 지난 삶을 돌아보면 늘 하고 싶은 선택을 접어두고 해야 하는 선택을 하며 살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올해 2월 말 사랑하는 할아버지를 천국에 보내드린 후 이런 제 삶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미 치열한 본과 2학년의 레이스를 하고 있을 때였지만 ‘여기서 한 번 쉼표를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사라지지가 않더군요. 그리고 한 달쯤 지나서 보따리를 쌌습니다. 저희 부모님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사람이 반대했지만 돌아보면 참 잘한 선택이었던 것 같아요.

제가 아프리카에 간다고 하니 사람들이 저를 대단하다는 눈빛으로 쳐다 보곤 했습니다. 의료...선교사의 ‘비전’을 품고 가는 ‘열정’적인 청년이 되는 기분이 들어서 민망했습니다. 사실 꼭 그런 것은 아니었거든요. 물론 3년 전 친구 요셉이를 통해서 Mercy Ships에 대해 듣고 언젠간 꼭 한 번 가봐야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그 당시 제게 이곳은 휴학을 하기 위한 가장 멋진 이유였던 것 같습니다. ‘아프리카 의료봉사’ 정도는 되어야 아무도 안 하는 휴학을 할 수 있을테니까요. 하나님께서는 아마 그런 저를 보시면서 씩 하고 웃으셨을 것 같습니다. 지금 제가 경험하고 있는 값진 선물들을 준비하고 계시면서요.

지원과정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습니다. 자기소개서, 목회자와 직장상사 그리고 친구의 추천서, 건강검진서, 그리고 다른 필요한 서류들을 준비해서 보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답장을 받았습니다. 지원은 생각했던 것보다 어렵지는 않았지만 문제는 제정적인 부분과 영어였습니다. 저는 5월부터 8월까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필요한 경비를 모으고 틈 나는 대로 영어회화 공부를 했습니다. 물론 작심삼일을 수없이 반복했지요. 처음에 이곳에 와서는 말 한마디 하는 게 그렇게 힘들었는데 다행히 지내다 보니 결국 어떻게 되긴 되더라고요. 혹시 영어 때문에 Mercy Ships 승선을 고민하고 계신 분 계시면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인우와 제가 산 증인이에요.

오늘로 제가 여기에 온지 2달하고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겔리(주방)에서의 일도 익숙해져서 아침 8시부터 저녁7시까지 계속되는 중노동도 이제는 할만 합니다. 힘들면 티 안 나게 요령도 부리고 함께 일하는 친구들과 노래 부르고 춤도 추면서 즐겁게 일하고 있지요. 이곳에는 늘 음악과 춤과 웃음이 있어서 참 행복합니다. 음악이 나오면 저는 아프리카 춤을 추고 이 친구들은 강남 스타일을 추곤 하죠. 물론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라 실수도 있고 갈등도 있고 실망도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 가운데서 그런 어려움을 해결해 나가는 것을 보면서 이런 시간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듬어 가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굳이 찬양을 하지 않아도 말씀을 나누지 않아도, 이렇게 예수 안에서 하나됨이 예배라는 것을 가슴 깊이 느끼곤 합니다.

이틀 일한 뒤에 주어지는 이틀간의 휴식 시간에는 다양한 활동들에 참여합니다. 처음에는 그래도 명색이 의대생인데 병원에서 일 좀 하게 해주지 하는 생각에 입이 삐죽 나왔었는데, 지금은 마음 고쳐먹고 제가 할 수 있는 다른 일들을 감사함으로 하고 있습니다. 저는 주로 환자선별 작업을 가거나 Hope center, 교도소, 농아인 학교 같은 곳을 방문해서 Mercy Ministry(사역)을 돕고 있는데 하나 하나의 사역이 참 귀하고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줍니다. 좀 지루할 때는 친구들과 바람 쐬러 나가거나 갑판에 올라가서 아름다운 노을과 시원한 바람을 만끽하기도 하고 현지 청년들과 축구도 종종 합니다. 이 이야기들을 다 나눌 수 없다는 것이 아쉽네요. 궁금하시면 저와 페이스북 친구가 되어 주세요 히히.

오기 전에 그런 기대를 했었습니다. 이곳에서 주님이 강한 바람, 지진 그리고 불 같이 드라마틱하게 말씀하지 않으실까 하구요. 그러나 제 생각과는 다르게 그분은 잔잔한 저녁 노을처럼, 수술실 앞 의자에 앉아서 드리는 잠깐의 기도처럼, 환자 선별작업에서 본 한 아버지의 눈물처럼, 병실에서 본 어린아이의 미소처럼, 설거지 하면서 부르는 콧노래처럼, 그렇게 세밀한 소리처럼 다가오셨습니다. 저는 그 음성 들으면서 로뎀나무 아래의 엘리야처럼 잘 먹고 잘 쉬었습니다(열왕기상 19장). 아무리 생각해도 이보다 더 ‘행복한 쉼표’는 없을 것 같네요. 이 시간은 많이 지쳐 있었던 제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3주 뒤면 한국으로 돌아갑니다. 아쉬움이 많이 남지만 제게 주어진 남은 시간 감사한 마음으로 기쁘게 지내다가 돌아가렵니다. 생각나실 때마다 기도해주세요. 그리고 Mercy Ships 사역에 더 관심 가져 주시고 후원과 자원봉사로 힘을 실어주세요. 감사합니다.

2012. 1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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