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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랑하는 쏘우리들에게

북진! 병장 정규성입니다. 모두들 평안하신지요? 보고 싶습니다. 이제 얼마 안 남았는데, 복학하면 함께 잘 지내봅시다. 문득문득 소울 생각이 많아지는 요즘입니다. 얼마 전 현석이가 면회를 왔는데 어찌나 반갑던지! 형 준다고 이런 저런 과일도 많이 사오고, 함께 가지고 온 한동 신문은 학교로 돌아가고 싶은 제 마음을 더 애타게 만들더군요. 그리고 우리 둘의 대화도 결국 “SOUL” 이야기로 끝이 났습니다. 

“현석아, 어디 도망갈 생각 하지 말고.. 남은 2년도 SOUL에 올인이다!”

비록 현석이의 대답은 시원찮았지만, 저는 벌써부터 고참 선배가 되어있을 우리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설레어 합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동아리에 소홀해 지지 않게, 복학하면 시간 관리도 잘하고 공차는 시간 좀 줄여야겠어요.

소울 사람이 된지 벌써 3년하고도 반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갔네요. 지금 06,07학번 후배님들처럼(아닌 사람도 좀 있겠지만) 머릿속에 온통 “SOUL"이라는 이름만 가득 차 있었던 시간이 제게도 있었습니다. 돌아보면 소울에서 미친 듯이 달렸던 그 2년의 시간처럼 저를 많이 성장시킨 시간은 없었던 것 같네요. 물론 성장통도 있었지만, 많은 부분에서 어렸던 제게는 SOUL에 있는 시간 자체가 큰 도전이었습니다. 행복한 시간보다 지치고 힘들었던 시간, 끝없이 고민하고 괴로워했던 시간이 훨씬 더 많았음을 이제야 솔직히 이야기할 수 있겠네요. 그래도 인내심 없는 제가 어찌 어찌 끝까지 열심히 하기는 했네요(아직 좀 남았지만). 제 인생 처음으로 뭔가를 진득하게 해본 것 같습니다.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저를 가장 지치게 했던 것은, 제가 농아인들에게 헌신해야 하는 그 “의미”를 찾기가 힘들다는 것이었어요. 공동체 안에서 그 의미에 대해 가르쳐 주는 사람도, 이야기 하는 사람도 없었고, 간간히 우리에게 들려오는 그 의미라는 것도 제게 잘 전달이 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의무와 강요도 많았던 것 같구요. 소울에 녹아있는 수많은 의미들과 바람들.. 다양한 배경과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다양한 이유로 모여든 이 공동체에 하나의 통일된 방향을 찾는 일이 참 힘들더라구요. 회장이 돼서도 그 일이 제게는 가장 큰 부담이었습니다. 하지만 모른 척 할 수도 없는 문제였구요. 

“소울인데 왜 수화 열심히 안하냐?” “다른 사람들 다 가는데 넌 왜 농아인 교회 안가냐?” “크리스천이면서 왜 그들을 섬기지 않느냐?” 공동체 안에서 이런 말들을 참 많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말들이 알게 모르게 저와 동기들에게 그리고 공동체 내에 여러 사람에게 많은 상처를 남긴 것 같네요(어느 한 쪽의 잘못이라고 하기는 힘들지만). 하지만 저희에게는 그런 지적을 하는 사람들보다, 소울이라는 공동체의 정체성에 대해서, 우리가 왜 모였는지, 왜 수화를 배워야 하고 왜 그들을 섬겨야 하는지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고 정성으로 가르쳐 주는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답을 가지고 있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런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우리와 함께 고민해 줄 누군가가 필요했던 것 같아요. 

지금은 누가 그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군대에 있는 동안 그런 선배님들이 많이 계시기를 기도했는데.. 제가 그랬던 것처럼 후배님들도 모두들 각개전투 하고 있나요? 각자의 의미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 하고 있는지요? 만약 그렇다면 선배님들이 자기 자리를 잡아 주시길 바랍니다. 많이 도와주셨으면 좋겠어요. 여러 행사를 도와주고 격려해주고 맛있는 것을 사주기 전에 후배들에게 그 “의미”를 나눠줬으면 합니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것들이 다르겠지만, 그 하나하나가 다 가치가 있는 것이라 생각해요. 주님 안에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겠죠! 선배인 우리가 줄 수 있는 가장 소중한 것은, 소울에 있었던 시간동안 우리가 깨달은 그 “의미”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번 수화제를 준비하는 기간에 특히 더 이런 이야기들을 많이 나눴으면 좋겠네요. 또 그 마음과 정신을 수화제에 담았으면 더 좋을 것 같구요. 수화제에 온 사람들은 우리가 외치는 그 의미를 가슴에 품고 갑니다.


#2.

또 한 가지 더 말하고 싶은 게 있네요. 제게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는 사건(?)이 있는데, 영우 선배가 기도회를 인도할 때로 기억합니다. 그때 선배님이 저를 포함해 가장 열심이 활동 한다고 생각하는 세 사람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농아인 교회에 가는 이유가 무엇이냐?” 저는 대답을 기다렸습니다. 제가 궁금했던 것이 그거였거든요. 과연 어떤 대답이 나올까? 그런데 거기서 나온 대답은 한마디로 “소울에 들어왔으니 가야 한다” “크리스천이니까 농아인 섬겨야 한다” 였습니다. 그때 저는 “농아인들을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라고 얼버무렸구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SOUL이라는 공동체에 들어왔다는 이유로, 들어올 때 다 각오하지 않았냐는 이유 하나로 수화 열심히 배워야 하고, 친하지도 않은 농아인 자녀 교육시켜야 하고, 재미없고 낯설기만 한 농아인 교회를 가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을.. 전 그렇게 강요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위에서 말한 사항들은 강요가 아니라 권면이 되어야 하고, 그 사람이 끝내 마음을 돌이키지 않더라도 존중되어야 하는 선택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대학생인데 왜 그렇게 공부 열심히 안하냐?” “크리스천인데 왜 그렇게 성경 안보고 찬양 안하냐?” “너는 카타르시스 축구 동아리 만들어 놓고 왜 SOUL에만 신경 쓰냐?” 이런 물음과 비슷하다고 전 생각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속해 있는 곳에서 우리에게 원하는 그 책임들을 다 감당하지 못하자나요. 다 감당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십자가의 용서가 필요 없겠지요. 우리가 짓는 죄란 쉽게 말해 우리가 하나님께서 정해놓으신 그 책임들을 다하지 못할 뿐 아니라 무시하는데 있는 것이 아닌가요? 그리고 그 책임은 하나님과의 관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맡겨진 일, 하나님이 붙여주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로 넓어지는 것이겠죠.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다 부족한 사람들이고, 누군가를 정죄할 수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소우리 중에 누군가가 놓아버리고 포기해버리는 부분이 다른 어떤 것이 아닌 “SOUL”이 된다고 해서 정죄할 수는 없지 않을까요?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우리의 연약함을 안타까워하듯이 그 연약함을 안타까워하고, 하나님께 아뢰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노력으로 품어서 돌아오게 하는 것이라 생각해요. 그리고 그 전에 우리가 먼저 그 사람이 이 공동체에 다시 돌아와야 하는 이유를 깨달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아까 위에서 제가 “의미” “의미”했는데, 그 의미를 먼저 우리가 명확히 해야 합니다. 그걸 깨달은 선배님들이 그 부분에 있어서 꼭 도와주셔야 해요. 지금까지 열심으로 SOUL에 남아서 헌신하는 선배님들이 각자 가진 그 “의미”를 후배들에게 심어주셨으면 합니다. 

제가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수화제 기간 동안에 많은 사람이 시험(?)에 들기 때문이에요. 특히 06학번들 중에는 기쁨보다는 부담감으로, 자발적인 마음보다는 의무감으로 하는 사람도 더러 있을겁니다. 2학년 2학기면 전공을 본격적으로 깊게 들어가는 시간인데, 지금 내가 뭐하고 있는 건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올해만 끝나면 SOUL은 안녕이다 하고 생각하는 사람도 혹 있을지 모르겠네요. 그 힘든 시간을 저도 겪어 봤고, SOUL에 있었던 모든 선배들이 겪어 봤습니다. 그래서 더 안타깝고 못 도와줘서 미안해요. 제가 그런 여러분들에게 할 수 있는 말은 이 힘든 시간에 우리를 지탱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함께 나누는 시간을 꼭 가지라는 겁니다. 그리고 힘들어서 동아리를 접어버린 사람이 있다 할지라도 그 사람을 정죄하지 않았으면 좋겠구요. 그 대신 그들이 언제라도 돌아올 수 있게 문을 열어 놓으세요. 그리고 함께 힘을 모아서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앞으로 계속 노력하구요(저도 함께).

 
#3.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더하겠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우리 동아리는 정말 고생스러운 동아리에요. MIC는 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GO는 Worship, 밀란은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입니다(꼭 그런 것만은 아니지만). 소울은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입니까? 수화라는 언어인가요? 사회봉사인가요? 교제인가요? 공연인가요? 그냥 들어왔나요? SOUL은 다른 공동체에 비해 공통분모가 불투명하자나요. 다른 어떤 공동체보다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생각으로 모이는 곳이 바로 SOUL인 것 같아요. 그래서 동아리 안에서 하는 활동이 다른 어떤 공동체보다 다양하고(정신없고) 이질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공연은 재밌는데 사회봉사나 농아인 교회 가는 건 힘들지 않습니까? 그 반대 경우도 있겠죠?

여러분, 여러분이 하는 그 고생이 의무적인 건가요? 안하면 안 되는 건가요? 아닙니다. 힘들면 놓으셔도 되요. 무책임한 말 같지만, 동아리가 그런 거 아닌가요. 요즘은 좀 힘들다 싶으면 숨쉬기도 그만두는 세상인데, 마음에 안 들면 나라 국적도 휙 하고 바꿔버리는 사람 많은데, 소울이라는 동아리 하나 그만둔다고 뭐가 달라질까요? 남은 시간 설렁 설렁 하다가 선배가 되어 조금씩 자취를 감춰간다고 누가 여러분에게 책임을 묻겠습니까?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여러분이 정말 그렇게 하라는 것이 아니라(제발 안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이 세상에 그 어떤 것도 우리에게 이 공동체를 감당(사랑)하라고 강요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그럴듯하게 이야기해도 “싫어” “힘들어” 이 말 한마디만 하면 됩니다. 이것으로 여러분을 얽매이게 하는 것은 끝입니다. 미안한 마음이 들면 이렇게 속으로 위로하면 됩니다. “다들 그렇게 했는데 뭐... 3,4학년이 되니까 만만치가 않네...”

그런데, 저는 여기서 끝낼 수가 없어요. 제게는 세상에 속하지 않는 뭔가가 있습니다. 유일하게 그 이유가 될 수 있는 것이 있어요. 그것은 바로 저와 여러분이 삶 가운데서 고백하고 다니는 “하나님의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사랑하지 않아도 되는 소울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 떠나도 되는 공동체를 떠나지 않고 끝까지 자리를 지키는 이유. 잠자는 시간 줄여가며 창조의 고통을 느껴가며 수화제를 만들어 내야 하는 이유. 말 잘 통하고 가끔 전기도 통하는 같은 연배의 청년들이 아닌, 여전히 낯설기만 한 농아인 아줌마 아저씨들과 예배를 드려야 하는 이유. 영어 공부할 시간도 부족한데 어디 잘 쓰이지도 않는 수화까지 배워야 하는 이유. 선배가 되어 학업에 쫓기면서도 후배들을 위해 울타리 모임을 이끌고 그들을 양육해야 하는 이유. 이 이유에 답할 수 있는 것은, 이렇게 여러분을 희생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은 여러분이 경험한 그 “은혜” 밖에는 없습니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요일 4:19)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 15:12)

그 은혜가 우리의 공통분모가 되었으면 해요. 우리가 믿는 “하나님의 사랑, 십자가 사랑”이 우리의 공통분모가 되었으면 합니다. 저는 이것 밖에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소울을 지탱할 힘은 이것 밖에는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시스템을 만들고 선배들이 후배들을 잘 챙긴다 해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복음을 진정으로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들이라면 우리 공동체는 엔진 없는 자동차가 될 겁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은혜를 진정으로 경험해 본 사람에게 이것은 희생이 아닙니다. 이것이 희생이라고 느껴지는 사람은 아직 그 “은혜”를 깊게 맛보지 못한 사람이 아닐까 싶네요.

 

#4.

제겐 하나의 확신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를 데리고 시간낭비 하지 않으신다는 거죠. 여러분을 소울에 보내신 건 분명한 목적이 있어서 보내신 거예요. 그 인도하심과 목적을 가볍게 여기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후배님들.. 그 목적을 찾기 위해 매달리세요. 하나님께서 SOUL을 통해서 주시는 도전들에 당당히 직면하세요. 믿음의 공동체를 세우는 법을 배우세요. 문제가 있어서 떠나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가 있기 때문에 끝까지 남아 있는 진정한 크리스천이 되세요. 내 사랑으로는 그 어떤 누구도 섬길 수 없다는 것을 경험하세요. 우리 주변에서 무시 받고 천대 받는 이웃들을 바라보세요. 그들이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바로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책임감을 가지세요. 그들을 외면하고 싶을 때, 하나님이 주시는 용기와 지혜로 당당히 맞서는 법을 배우세요. 이 모든 일을 하기 위해 효율적으로 시간 관리하는 법을 배우세요. 집중해서 공부하는 훈련을 하세요. 사랑하는 동기들과 동역하는 법을 배우고, 그 과정에서 잘 맞지 않는 사람들과 관계 맺는 법을 배우세요. 사람을 섬기는 일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체험하세요. 하나님께서 우리의 이런 부족한 노력들을 정말 기쁘게 여기신다는 그 음성을 여러분이 직접 들으세요!

SOUL이라는 공동체에서 경험하게 되는 그 수많은 일들을 감사함과 기쁨으로 그리고 믿음으로 감당한다면, 여러분은 정말 크게 성장할 겁니다. 그 과정으로 통해 주님께서 여러분들을 진정한 크리스천으로 성장시키실 겁니다.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사람으로 성장시키실 겁니다.

수화제 꼭 가보고 싶었는데 못 가게 돼서.. 아쉬운 마음을 풀 겸 해서 주저리 주저리 몇 자 적었습니다. 몇 자라고 하기에는 좀 많지만.. 아무튼 내년에 모두들 웃는 얼굴로 봐요. 앞으로 남은 행사들 은혜 가운데 잘 마치도록 기도 열심히 할게요. 그리고 우리 리더인 종혁이를 위해서 모두들 기도 많이 해주세요. 생식 2학년 2학기 정말 피토하는 학깁니다. 종혁이가 건강한 정신으로 무사히 임기를 마칠 수 있도록 늘 중보기도 해주시길 바랍니다. 아시겠죠? :)

두서없는 글 마칩니다. 모두들 사랑해요. 안뇽!

 
2007. 10.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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