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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교에는 수화 수업도 있습니다.” 작년 11월 23일 날 있었던 장애인 복지 세미나에서 총장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세워진 한동대학교에는 이렇게 수화 수업이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병드시고 가난한자를 돌보신 그 모습이 반영 된 교육 과정이라 할 수 있고, 의사소통의 장애가 가져온 농아인과 건청인 사이의 벽을 조금이나마 허물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가치 있는 교양 수업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올바른 정신으로 시작된 수화 수업이 두 가지 문제에 부딪혔습니다. 하나는 수강생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2학기 동안 수화 1,2를 다 수강하였는데도 불구하고 농아인들과 대화 하는 것이 여전히 어렵다는 것입니다. 불과 4년 전만 해도 수화 수업은 수강생이 많아서 60명씩 2반으로 나눠야 했습니다. 하지만 수화가 1학점으로 바뀌고 난 후부터 수강생들이 점점 줄어 들기 시작했고 그 결과로 올해는 수화1 분반을 하나로 줄이고 수화2 수업은 2학기에만 열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 열심을 내어 1년 동안 수화1,2 수업을 수강한 학생들도 여전히 농아인들과 대화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낍니다.

이 문제들은 어제 오늘 갑작스럽게 나타난 것이 아닙니다. 몇 년 전부터 수화 수업 강사들과 학생들 사이에서 논의 되어 왔던 문제들이 당연한 결과물을 내어 놨을 뿐입니다. 이 문제들을 분석하고 개선 방안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수화와 농인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언어학 전공자도 아니고 관련된 전문적인 지식도 없는 학생이기에 여러 자료들을 선별하고 분석하고 정리하는데 서투르고 어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교수님들께서는 제 글의 서투름보다 중심을 보실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수화, 또 하나의 언어

어떤 수업이든지 학생수가 적거나 줄어드는 수업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수업에 학생들이 흥미와 재미를 가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유가 아니라면 그 수업은 어렵고(학점에 비해) 특별히 필요한 과목이 아닐 것입니다. 수화 수업이 전자인지 후자인지 단정 지을 수는 없겠지만 수화 수업을 들었던 학생들의 반응과 설문 조사를 봤을 때 전자 보다는 후자에 더 무게가 실린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수화 수업이 어려움을 가지는 것은 수화도 하나의 다른 언어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나라의 언어를 배우고 거기에 익숙해 진다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닐 것 입니다. 그 일은 단어를 외우고 문장 형식을 외우는 것을 넘어선, 한 나라의 문화와 가치와 관점까지 알아야 하는 총체적인 접근이기 때문입니다. 수화를 배우는 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말을 하면 수화가 왜 다른 나라의 언어인지 의아해 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수화를 음성 언어의 파생형 즉, 한국어의 부산물로 생각 하고 농아인들을 단순히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장애인으로만 인식하는 한다면 당연한 반응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수화는 또 다른 언어이고 농아인들은 같은 나라에 사는 다른 민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예전에는 수화를 음성언어에 기초를 둔 언어라고 인식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를 비롯한 각 나라들은 음성 언어와 일대일로 대응하는 문법 수화를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미국을 중심으로 하여 1960년대부터 활발해진 수화 연구에 힘 입어 언어 학계에서는 수화를 음성 언어와 다른 문법 체계와 특징을 가진 하나의 언어로 인정하게 되었고 지금도 많은 연구 자료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또 미국에서는 1986년에 수화가 외국어로 인정 받게 되었고, 1997년에는 대학교 과정에서 수화를 외국어로 인정하는 법이 통과되어 28개 주가 인문 또는 선택 학점으로 수화를 외국어로 강의하고 있습니다. 수화를 하나의 언어로 인식하며 외국어와 함께 외국어의 문화를 경험하도록 하는 수화의 기능을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대학에 수화가 외국어 과목의 하나로 언정 되면서부터 수화 수업 수강생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현상은 사회 통합의 측면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보이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수화를 외국어로 볼 수 있느냐 하는 부분에 있어서 활발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아직은 다른 나라들에 비해 수화에 대한 연구가 미흡하고 수화를 외국어로 인정하기 위해서는 설득력 있는 연구 결과들이 더 나와야 한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다른 나라의 수화가 하나의 언어라는 것을 넘어서 외국어로 인정 받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 나라 수화의 연구에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수화가 외국어로 인정 받는데 필요한 결정적인 연구 결과들이 발표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같은 나라, 다른 민족

두 번째로 농아인들이 같은 나라에 사는 다른 민족이라는 것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농아인들의 사회는 우리와 다른 그들만의 농 문화와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고 이것은 그들을 미국에 있는 코리아타운처럼 구별된 형태로 존재합니다. 전통적이고 일반적인 농(청각장애)의 정의는 개인의 “청각 상태”에 초점이 맞추어져 왔습니다. 이는 농을 건청인에게 의존해서 살 수 밖에 없는 감각기관의 선천적 또는 후천적 상실로 인식하는 병리학적인 관점입니다. 그러나 농 그 자체를 하나의 문화적 인류학적으로 해석하고 접근해야 된다는 움직임이 1960년대부터 활발히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이 움직임은 농인을 바라보는 시각을 병리적 관점에서 사회문화적 관점으로 변화시켰습니다. 사회 문화적 관점은 농인들이 사용하는 수화를 이들의 모국어로 인정하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즉, 1950년데 중반 stoke(1960)에 의해 농인들이 사용하는 미국수화가 언어학적으로 주목을 받으면서부터, 농인들을 주류 언어와는 다른 구별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언어적 소수집단으로 이해하게 된 것입니다.

마서즈 비니어드 섬 사람들에 대해 들어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17세기에 영국 켄트 지방의 가정들이 마서즈 비니어드 섬에 이주해 정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유전적 청각장애의 열성유전자를 보유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섬마을 주민들의 대부분이 농아인 이었는데 그 결과 이 섬의 농아인과 건청인 모두가 수화를 사용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유래로 비니어드 사람들은 수화로 말하고, 전혀 다른 공동체의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건청인과 농아인이 완전 통합된 비니어드 사람들의 이 이야기는 농아인을 바라보는 사회 문화적 관점을 입증해주는 좋은 예시가 되고 있습니다.

사회 문화적 관점으로 그들을 바라본다면 그들이 만들었고 만들어가고 있는 농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 농아인을 이해하는데 가장 빠른 길이 될 것입니다. 한국인을 알기 위해서 한국 문화를 알아야 하는 것 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농 문화에 대해 조금 더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농인들은 대게 청인 부모들에게서 이 세상에 태어나지만 성장 과정에서 농인 세계의 다른 구성원들과 강한 연대감을 갖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농 문화가 농인들을 한데 묶는 역할을 하는데 농인 세계의 구성원들이 같은 장애와 언어는 물론이요 같은 문화적 유산이라 할 수 있는 가치관과 관습에 의해서 결속됩니다. 같은 언어를 공유하는 다른 대부분의 민족들과 마찬가지로 농인들도 함께 농 사회(Deaf Community)라는 독자적인 영역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농 사회는 미국의 차이나타운, 코리아 타운과 흡사합니다. 그리고 이런 농 사회의 구성원들은 건청인 중심의 주류 사회의 문화적 영향력 앞에서 소수 민족으로서, 사회적 약자의 위치에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한국에는 대략 35만의 농아인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듣지 못한다는 사실을 제쳐놓고는 청인과 똑 같은 능력과 재능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농인들은 사회적 약자의 자리에 위치하게 됩니다. 이는 농인들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닙니다(농인들 중 90% 정도는 후천적). 듣지 못한다고 청인들이 농인들을 향해서 쳐 놓은 많은 장벽이 농인의 사회적 상호 작용, 교육, 인성 발달 그리고 삶의 양식 등에서 청인과의 매우 중요한 차이를 일으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수화 수업 개선을 위한 제언

지금까지 수화의 언어적 특성과 농아인에 대해 간략하게 적어 보았습니다. 앞에서 이야기 한 것처럼 수화는 한국어의 부산물이 아닙니다. 농아인들과 우리들의 문화도 다릅니다. 때문에 수화를 배우고 농아인들에 대해 알아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수화를 배운다는 것은 또 다른 언어를 배우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 어려움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몇 년전 학교에서는 2학점이던 수화 수업을 1학점으로 낮추었습니다. 그 결과는 수강생들이 줄어 수화1 분반을 하나로 줄이고 수화2는 2학기 때만 열리게 만들 만큼 부정적입니다.

평소 친분이 있는 농아인 한 분이 몇 년 전에 포항에 있는 대학에 입학하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포항에 있는 어느 한 대학도 원서를 주는 곳이 없었습니다. 실력을 평가 받을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장애인의 입학에 준비되어 있는 대학이 많이 없는 우리나라에서는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제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실력을 평가 받을 기회도 주어지지 않아서 속상하다. 다른 대학은 그렇다 쳐도 한동대학교는 은근히 기대했는데 다른 대학과 다른 점이 없더라. 하나님의 대학이라고 하면서 장애인들에 대해 너무 무관심 한 것 같다. 장애인들의 입학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앞서 나간다면 정말 다른 대학의 모범이 될 것 같은데…… 한동대학이야 말로 이런 일들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아쉽고 속상하다.”

저는 한동대학교를 자랑스럽게 생각하지만 한가지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한동대학교가 장애인들이 들어올 수 없는 학교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준비 과정에 있었든지 아니면 관심이 없었든지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10년이 지난 지금부터라도 그 일에 관심을 가지고 하나씩 준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 멀리 사는 제 3세계 학생들이 우리 학교에 오는 길은 열려 있지만 바로 옆에 사는 농아인들이 들어올 길은 전혀 없다는 사실에 대해 무감각해지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당연한 결과가 아니라 우리의 무관심이 하나 하나 쌓여서 생긴 장벽입니다.

저는 수화 수업이 활성화 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수화 수업의 활성화는 그 장벽을 무너뜨릴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수화 수업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먼저 학점을 올려야 할 것 입니다. 학점을 올리게 되면 수화 수업을 듣고는 싶지만 1학점이라고 하기에는 벅찬 수업 내용을 부담스러워 하거나 또는 월,목 5교시의 황금 시간을 1학점으로 채우기를 아까워 하는 학생들이 수화 수업을 듣게 됩니다. 그렇게 된다면 수강생들을 매 학기마다 점점 많아질 것이고 몇 해 지나지 않아 다시 예전처럼 매 학기 100명 가까이 되는 학생들이 수화를 배우게 될 것입니다. 또 학점을 올린다면 1학점으로 남아있는 한 시도할 수 없는 (지금의 수업도 학생들에게 많이 부담이 되기에) 커리큘럼의 변화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수화 1,2를 들어도 농아인들과 대화하기 힘든 지금의 한계들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수화를 듣는 학생들이 많아지고 수준이 올라간다는 것은 그만큼 농아인들의 언어와 문화를 경험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것이기에 그 수업은 농아인과 건청인 사이의 벽을 허무는 시작이 될 것입니다.

두 번째는 전문인 양성입니다. 건청인들이 수화를 많이 아는 것 만으로는 농아인들이 한동대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생활하기에는 부족합니다. 한동대학교에서 농아인들이 우리와 같이 생활하기 위해서는 농아인들에 대해 잘 알고 그들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섬길 마음이 있는 수화 통역사가 필요합니다. 우리 학교에는 상담사회 복지학부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 농아인을 섬기고자 하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수화 수업이 활성화 된다면 수업을 통해 그런 비전을 가지는 사람도 분명히 생길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런 학생들에게 지금의 수화1,2 수업 이상의 것(수화통역사반 같은)을 학교나 학부에서 제공해주고 관심 가지고 지원해 준다면 학교 수업을 통해 배운 수화로 충분히 전문인(수화 통역사)이 되어 농아인 사회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을 것입니다. 매년 2~3명의 수화 통역사가 우리 학교에서 나온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10년 동안 그분들이 가르치는 학생들과 연구 결과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때가 되면 한동대학교에 농아인들이 입학하는 시스템이 갖추어 지는 것이 그리 꿈 같은 이야기만은 아닐 것입니다. 지금 제가 말씀해 드리는 것은 하나의 커다란 프로젝트가 아닙니다. 작은 관심을 가지고 10년 동안 꾸준히 준비한다면 한동대학교도 영남대나 나사렛 대학처럼 농아인들이 입학할 수 있는 대학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해 드리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수화 수업이 가지는 어려움과 지금의 현 주소 그리고 학점을 올려서 수화 수업을 활성화 해야 하는 이유들에 대해 짧은 제 생각을 적어보았습니다. 학점을 올리는 것이 절차상으로 까다롭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교수님. 한번 힘을 내주십시오. 수화 수업에 힘을 실어 주시고 학생들이 학점 때문에 부담이 되어서 수업을 듣지 못하는 일이 앞으로는 생기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학교에서 학점을 올려 주시고 분반을 늘려주시고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 주신다면 그 나머지는 저와 강사님들과 수화동아리와 농아인을 섬기고자 원하는 학생들이 채워 나갈 것 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농아인과 건청인이 하나 된 10년 뒤의 멋진 한동을 기대하면서 이 글을 마칩니다.

2005. 10. 19.

우여곡절 끝에 수화 수업은 2학점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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