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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공부방법’에 관한 글을 써 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얼떨결에 쓰겠다 대답은 했지만 막상 글을 시작하려니 쉽지가 않네요. 사실 의전원에 입학할 정도의 실력을 가진 분들에게 굳이 이런 글이 필요할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다들 한 공부하셨기 때문에 여기에 입학하셨을 텐데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는 기분이랄까요? 그래도 누군가에게는 작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몇 가지 떠오르는 생각들을 나눠봅니다. 

종종 제게 공부를 어떻게 해야 되는지 물어보는 후배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저는 목표가 뭔지를 다시 되묻곤 합니다. 대부분 좋은 ‘성적’을 받는 것이 목표라고 하더군요. 실력과 성적은 어느 정도 상관관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고 3학년 때 실습을 돌다보면 그런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됩니다. 그래서 자신이 어떤 것을 원하느냐에 따라 ‘공부방법’에 대한 대답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저는 진짜 실력, 다시 말해 내공을 쌓는데 어떤 공부방법이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나누고 싶습니다.
 

1. 좋은 관계가 곧 실력

뜬금없죠. 그럴듯한 공부방법이 나올 줄 알았는데 갑자기 ‘관계가 실력’이라니. 하지만 저는 이 이야기는 가장 먼저 하고 싶습니다. 그만큼 제게 중요한 주제이기 때문입니다. 주변 동기들과 선후배간의 관계 그리고 환자들과의 관계를 잘 맺는 것이 의료인에겐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실력이라는 것. 1학년을 마친 후 휴학을 하고 다시 학교 생활을 시작하면서 가장 많이 깨닫고 반성했던 부분이었습니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제 인생을 통틀어 가장 열심히 공부한 시기가 본과 1학년 때였습니다. 실력이 있는 의사가 되어야겠다는 열정 하나로 하루하루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공부 외에 다른 것에는 시간을 쓰는 것이 참 아까웠습니다. 동기들과 술 한 잔 기울이는 시간조차 제대로 한 번 가져보지 못한 채 1년을 보냈습니다. 수업이 끝나면 조용히 방에 틀어박혀 공부하면서 ‘실력 있는 의사가 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며 제 자신을 다독이곤 했었습니다. 

하지만 휴학을 하고 의료현장을 직접 몸으로 경험하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아무리 똑똑한 의사라 할지라도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현실'을 경험하게 되었던 것이죠. 의사가 되어 좋은 의술을 베풀려면 필연적으로 다른 의료인들과 협력할 수밖에 없고, 그걸 얼마나 능숙하게 잘하느냐가 의사의 실력과도 직결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독고다이로 공부만 했던 제 모습을 반성하게 되었고, ‘관계가 실력’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부터 학교생활에 임하는 자세가 많이 달라졌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런 태도가 얼마나 중요했던 것인지를 3학년 실습을 돌면서 자주 느끼게 됩니다. 

 
2. 나만의 강의록 

‘좋은 관계가 곧 실력’이라는 이야기 외에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나만의 강의록’을 만들어 보라는 것입니다. 대부분 공감할거에요. 새로운 과목을 시작할 때마다 받게 되는 묵직한 강의록과 매일 주어지는 유인물들의 양이 만만치 않다는 걸. 시험을 앞두고 이런 저런 정리본과 야마까지 더해지면 공부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1학년 중반부터 그날그날 수업한 부분들을 따로 파일에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강의록에서 수업을 나가지 않거나 불필요하다 생각되는 부분은 과감히 버리고. 유인물의 경우에도 한 장에 8개의 슬라이드가 들어가도록 다시 인쇄를 했었어요. 그렇게 정리를 하면서 가끔은 ‘이게 무슨 삽질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렇게 정리를 해 놓으니 확실히 공부할 때 강의록을 많이 보게 되고 시간도 절약 되더군요. 또 한 과목이 마칠 때마다 기존에 받은 강의록과 유인물이 합쳐진, 다른 동기들이 가진 자료들의 2/3~1/2 두께 밖에 되지 않는 “나만의 강의록”이 만들어졌죠. 그리고 그렇게 정리해 놓은 강의록이 3학년 실습을 돌면서 많이 유용했습니다. 무엇보다 시험 때 열심히 공부했고 익숙해졌던 내용을 다시 보니까 이해도 잘되고 머리에도 잘 남는 것 같았어요. 

요즘에도 이전의 강의록들 중에서 필요한 내용을 추려서 가지고 실습을 도는데, 종종 조원들이 “아... 나도 이렇게 정리해 놓을걸!” 하는 아쉬움을 이야기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내가 이거 하나는 정말 잘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하네요.   


3. 복습은 녹음으로

정말 특별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아침부터 오후까지 계속되는 수업을 마치고 다시 공부할 마음은 쉽게 생기지 않죠. 하지만 그렇다고 복습을 하지 않으면 수업 때 배운 내용이 거의 기억나지 않고, 시험기간 때 너무 몸과 마음이 힘드니까 어떻게든 하기는 해야 되겠고. 그래서 저는 일단 수업을 마치면 위에서 말한 대로 수업자료들을 정리해 놓고,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서 쉬던지 복습을 하던지 결정을 했었어요. 

복습은 주로 녹음파일을 들으면서 했는데,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제게는 그 방법이 가장 효율적이었던 것 같아요. 수업 때 이해되지 않았거나 졸아서 놓친 부분들 중심으로 들으면 시간이 그렇게 오래 걸리지도 않거든요. 그리고 녹음파일을 듣는 것만으로도 공부한 내용이 어느 정도 머리에 남기도 하구요. 그렇게 녹음을 들으면서 매일 복습을 하려고 했지만 사실 생각만큼 잘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2~3일에 한 번 정도는 했었고, 시험 며칠 전까지는 어떻게든 밀린 녹음파일을 다 들었던 것 같네요. 저처럼 몰아서 하지 않고 그날그날 꾸준히 하는 동기들이 실력도 성적도 좋은 것을 보면 분명 효과가 있는 방법인 것 같습니다.


4. 단거리가 아니라 마라톤

1-2학년 때 공부를 할 때나 3학년 때 실습을 돌 때 멘탈이 무너질 때가 자주 있죠. 난 왜 이렇게 아는 것 없이 무식한가, 머릿속에 지우개가 들어 있는 걸까, 이렇게 해서 앞으로 뭘 하겠나, 등등 부정적인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때가 있어요. 특히 교수님께 영혼까지 털리고 난 후에는 후유증이 상당히 오래 남습니다. 잘하는 동기들과 나 자신을 비교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같은 강의실에서 공부하고 같은 밥 먹고 같은 시간 자는데 나보다 훨씬 잘하는 친구들을 볼 때면 기가 팍 죽기도 하죠.

하지만 그럴 때 마음 잘 추스르는 것도 실력입니다. 의학을 공부한다는 것, 의사가 된다는 것은 옆 사람과 비교해서 누가 더 빠른지 경쟁하는 100미터 경기가 아니라, 마지막 골인 지점까지 자신과 싸우며 묵묵히 달려가는 마라톤과 비슷하니까요. 아직 얼마 달리지도 않았는데 나보다 잘 달리는 친구들 보며 좌절하고, 2km 구간을 좋은 기록으로 끊지 못했다고 낙담해서 달리기를 포기한다면 남은 레이스가 너무 아깝지 않을까요? 정말 징하다 싶을 정도로 잘 달려가는 친구가 있으면 박수 치면서 먼저 보내주고, 생각보다 기록이 나쁘게 나와도 얼마든지 만회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꾸준히 이 길을 달려봅시다. 그렇게 계속 꾸준히 달려가다 보면 언젠가는 좋은 의사에 가까워진 우리들의 모습을 보며 흐뭇해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지금까지 공부와 관련해서 생각나는 몇 가지를 나눠봤습니다. 공부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정리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그리고 이곳에서 버티고 생활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열심히 하고 있는 거니까, 그런 자기 자신과 동기들을 토닥이는 시간 자주 가지시길 바랄게요. 힘내서 함께 갑시다. 전북의전 화이팅!

 

* 뭐지 나랑 닮은듯한 이녀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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