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환자를 더 볼 것인가 공부를 더 할 것인가?' 처음에는 둘 다 열심히 하려고 했지만, 내가 가진 시간과 에너지는 턱없이 부족하다. 주어지는 과제들, 케이스 발표들 준비하고 약간의 여유 시간이 생기긴다. 이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늘 고민된다.

이 시간에 책 한자 더 볼 것인지, 아니면 환자들과 시간을 더 보내고 history taking, PE, NE 같은 기본기를 익힐 것인지. 물론 두 번째 선택이 좀 더 힘들다. 환자를 보는 것은 행위 예술이 아닌가 싶을만큼 참 미묘하고 복잡하다. 특히 소아과는 아이들을 대하는 것이라 더 조심스럽다. 아이들 부모님도 지쳐 있거나 예민한 상태일 때가 많아 말 하나 행동 하나가 조심스럽다. 특히 학생들의 진료는 환자를 위한 것이라기 보다 우리의 배움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어제 오늘은 평소보다 더 많은 시간을 아이들과 보내려고 노력했다. 질환에 대한 것은 실습시간이 아니어도 언제든 공부할 수 있는데 (물론 그게 잘 안 되지만) 환자를 대하는 기본자세 및 술기들은 지금부터 익숙해져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내 담당 아이가 아니어도 지나가다 마주치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이뻐해주고 놀아주고 엄마들 이야기도 들어주고. 만약 아이가 얌전하고 순하면 배꼽을 보자며 청진, 촉진도 해보고. 이런 것들이 조금씩 익숙해진다. 처음에는 아이와 보호자에게 다가가 대화를 나누는 것이 어색하고 쉽지 않았는데. 아마도 '모르는 것을 물어 봤을 때 두루뭉실하게 대답하고 얼른 공부해 와서 슬그머니 아는 척' 하는 기술을 익혀서 자신감이 붙은 것 같다.

오늘 기억 남는 환자는 한 달째 매일 두어차례 치솟는 spiking fever로 고생하는 아이이다. FUO으로 잠정적인 진단을 내리고 그 원인을 찾고 있다. 난 이제 다른 파트를 돌고 있지만 요즘에도 매일 이 녀석을 찾아가 보게 된다. 추가 검사들을 해도 열의 원인은 찾지 못하고 열은 안 떨어지고. 이 아이도 가족도 점점 지쳐가는 것이 눈에 보여 나도 맘이 좀 그렇다.

평소에는 씩씩한 아이인데 병이 길어져서인지 오늘은 유독 일 가려는 엄마를 붙잡고 가지 말라고 찡찡 거렸다. 엄마 도와드리려고 아이패드로 뽀로로 극장판 틀어서 아이의 관심을 끌었는데 아주 효과가 좋았다. 아이들과 친해지기 위해 동영상 몇 개 아이패드에 넣어서 다니면 좋을 것 같다.

Kawasaki disease로 입원한 아이도 봤었다. 책에서 본 전형적인 증상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화농이 없이 양측 결막 충혈되어 있었고, 입술은 갈라지고, 목에 있는 림프절은 땅콩만큼 커져 있었다. 사실 그동안 림프절이 커져 있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몰랐는데 이제서야 알았다. 신기하기도 하고 중요한 소견 하나 더 배운 것 같아 뿌듯했다. 며칠 전에는 처음으로 VSD를 가진 아이의 pansystolic murmur를 들어 봤었는데. 아무튼 의사로서의 걸음마들을 요즘 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의미 있는 날들은 꼭 기록해 놔야지. 그리고 이런 배움이 나중에 환자들을 의해 잘 쓰였으면 좋겠다. 꼭 그럴거다.

아래 사진은 주 교수님 수업 시간에 찍은 사진. 칠판에 열심히 뭔가를 적어가며 EKG 설명하시는 교수님의 열정이 오늘따라 참 멋져 보였다. 기본기에 충실한 의사가 되라는 말씀이 마음에 남았다. 내일도 애들 이랑 많이 놀아야겠다.

2014.6.18

 

반응형

'사람 : 삶 이야기 > 2011-2015 의전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가 6장 8절 말씀  (0) 2014.11.23
아라빈드 안과병원 이야기  (0) 2014.11.23
Black & White 세상  (0) 2014.05.05
내가 살고 싶었던 삶  (0) 2014.05.05
명의정(明意亭)의 이른 아침  (0) 2014.04.20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네이버 밴드에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