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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을 위해 죽는 시늉조차 못 내는 사람들이, 복음이 목숨을 걸만한 것인지도 느끼지 못하는 이들이, 단지 자신들이 다수라는 이유로, 소수인 그들이 자신들의 믿음에 위협이 된다는 이유로, 죽음의 길로 걸어가는 그들을 혐오스러운 집단으로 만든다. 그리고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돌을 던지고 있다. 이건 진리를 지키기 위한 싸움이라기 보다 간음한 여인을 향한 사람들의 혐오와 정죄처럼 보인다.

 

돌을 던질 자격이 있는 사람이 누가 있나. 돌을 던지는 우리들의 모습이 어떻게 이처럼 당당할 수 있을까. 이단이 힘을 가지고 활개치는 이유를 스스로에게 물어본다면 무엇이라고 대답하려는가. 생명력 없는 우리의 신앙이, 가끔 이단보다 더 한 것 같은 오늘날의 부패한 교회가 그 소수를 탄생하게 만들고 널리 퍼지게 만들었다면 우리가 이렇게 당당할 수 있느냐 하는 말이다. 기독교라는 명찰만 붙이고 않아서 사랑도 공의도 없는 삶을 사는 우리가 그 소수의 집단을 만들어 낸 것이라고 말 한다면 뭐라고 대답하려는가.

 

한 영혼이 이단에 빠지기 전에 그 사람에게 단 한 번이라도 관심을 가지고 하나님의 귀한 지체로 아껴준 적 없는 사람들이 그 사람이 이단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나오니 드디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다. 우리가 그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해 주었다면, 우리가 복음을 바로 알고 깨닫고 그 사람에게 알려 주었다면, 외로움 때문에 이단들에게 빠지지 않도록 옆에 있어 줬다면..

 

어떻게 우리는 그렇게 당당할 수 있나. 뭐가 그렇게 당당해서 돌을 던지는 것인가. 무엇을 기준으로 그들을 이단이라고 하는지 아는가. 왜 신천지가 거짓이고 예수 그리스도만이 복음인지를 다수가 아닌 소수의 입장에 섰을 때도 고백할 수 있는가. 당신이 지키려고 하는 그 진리가 당신을 살아 움직이게 하는 것인가. 정말 그 진리 지키려고 피비린내 나는 삶을 살아내고 있는가.

 

우리는 이단에 맞서 목숨걸고 진리를 지켜야 한다. 하지만 그 말이 그들을 괴물 취급하고 협오의 대상으로 만들어 이 사회에서 추방하자는 말은 아니다. 그래서는 안 된다. 그런다고 해서 우리의 약함이 덮어진다고 생각하는건가. 우리가 이렇게 그들을 혐오의 대상으로 만들 수 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 자신부터가 두렵기 때문이 아닌가. 그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믿음의 거룩한 능력,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그 믿음의 야성을 잃어버렸으니 이런 식으로 밖에 반응할 수 없는 것 아닌가.

 

'우리의 가르침이 왜 미혹하는 가르침인지, 왜 기독교만이 진리인지 좀 가르쳐 달라. 그리고 그 진리의 힘을 우리에게 보여달라!' 이렇게 외치는 그들에게 우리가 내 놓을 답이 무엇인가. '그 많던 기독교인들 중에서 나에게 아무도 관심을 안 가져줄 때 그 사람들이 나를 진정으로 사랑해줘서 그들이 믿는 것을 믿게 되었다' 이 말을 듣고도 그들에게 맘 편하게 돌질 할 수 있는가. 먼저 울어야 되는 이야기 아닌가.

 

다른 사람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난 이단을 손가락질 할 자격이 없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그들을 향해 돌 던질 힘도 마음도 없다. 복음이신 예수님을 체험하고서도 그 자리에 가만히 머물러 나만의 신앙으로만 여겼던 내 죄책이 진리를 왜곡하는 그들의 죄보다 더 중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자격이 없다. 돌 던질 힘이 생긴다면 먼저 나한테 던지겠다.

 

이단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진리를 왜곡하는 그들을 막아야 한다. 그리스도가 피값으로 사신 영혼들을 지켜야 한다. 다만 미혹된 그 사람들을 대할 때, 주님께서는 그들을 어떻게 바라보실까? 하는 이 물음에 자신있게 대답할 수 없다는 것, 그래서 나 또한 조심스러워질 수 밖에 없다. 이단의 문제를 앞에 두고 모두들 혼란스러워하고 있는 지금, 지켜야 할 진리를 가진 이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행동은 회개의 무릎을 꿇는 것이다. 두리번 거리지 않고 나부터 시작하련다.

 

 

2010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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