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부대에 와서 처음으로 ‘진술서’라는 걸 써봤다. 이유인즉 이렇다. 

  다음 날 있을 FTX 훈련 때문에 어제는 9시에 취침을 했다. 난 <우찌무라 간조 회심기>를 읽고 있었는데, 중간에 덮기가 어찌나 섭섭하던지. 30분 동안 손전등으로 책을 보다가 안 되겠다 싶어 화장실로 슬그머니 갔다. 내가 보고해야 하는 불침번은 어디로 갔는지 안보였고, 귀찮은 마음에 그냥 화장실로 들어갔다. 읽어봐야 30분 정도 볼 테니 그리 문제가 안 되리라. 책 읽는 시간이 귀했던 이등병 시절에도 화장실에서는 1시간 이상 책을 본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2사로에 들어가 책을 펼쳐 들었다. 

  그런데 책에 얼마나 빠져들었는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영하의 추운 날씨 때문에 입김이 솔솔 나오고, 점점 몸이 움츠려들고, 냄새가 중간 중간 코를 찔렀는데도 말이다. 그냥 유익하거나 재밌는 책이었다면 벌써 덮었겠지만, <우찌무라 간조 회심기>는 그런 가벼운 책이 아니었다. 내가 요즘 들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 신앙적인 문제들을, 나를 진정으로 살게 만들고 기꺼이 죽을 수 있게 만들 그 진리에 대해 나와 같은 시기에 나보다 더 고민했던 영적 스승의 이야기였다. 그러니 어찌 지루함을 느끼랴. 벅찬 가슴에 무릎을 치며 읽었다. 

  한참을 그렇게 있었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내 거룩한 골방이 된 2사로에 노크를 했다. 누구냐고 물었다. ‘상병 정규성’이라 후딱 대답했으면 좋았을 것을. 왜 대답을 머뭇거렸는지 내 자신도 잘 모르겠다. 대답 하려는 찰나 들렸던 누군가의 목소리, 방해 받고 싶지 않은 마음. 뭐 이런 것들이 뒤섞였던 것 같다. 근데 조금 있으니 당직 사관이 왔다. 그리고는 뭐하는 놈이냐고 빨리 나오라고 고함을 질렀고 나는 후다닥 밖으로 튀어나갔다. 시간이 한 시간 반이나 지난 것도 그때서야 알았다.

  행정반에 들어가서 “죄송합니다!”를 연발했다. “넌 군종병 이전에 군인이다.” “화장실에서 책을 그렇게 오래 보는 놈이 어디 있냐?” “머리는 또 왜 그렇게 기냐?” 등등. 아무튼 사관에게 된통 혼이 났다. 같은 상병 불침번한테도 한 소리 듣고 말이다. 취침 소등해도 옥상에 담배 태우러 가고 뽀글이 먹고 전화도 하는 부대라 책보는 것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보다. 

  아무튼 꾸중을 좀 듣고 잠자리에 누웠다. 그런데 당직사관과 불침번에게는 미안하지만 그 일은 금방 잊혀졌다. 내 행동을 반성하는 마음은 있었지만 그것도 잠시, ‘우찌무라 간조’를 알게 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나는 가슴 벅차 올랐고 내일 읽을 마지막 장을 기대하며 잠이 들었다. 

  여기서 끝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랬다면 진술서도 쓰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오늘 새벽 <우찌무라 간조 회심기> 마지막 장을 다 봤다. 아침도 맛있게 먹고 샤워도 했다. 유난히 상쾌한 하루의 시작이었다. 그냥 쭉 그렇게 갔으면 좋았을 것을. 이런 저런 책을 읽다가 11시쯤 전에 빌렸던 책을 반납하고 ‘사이버지식정보방’에 가서 컴퓨터도 할 겸 부대로 내려갔다. 컴퓨터 사용 시간이 따로 있냐는 내 물음에 “그냥 아무 때나 가서 하면 된다.”는 선임의 답을 들었기에, 아무 거리낌 없이 들어갔다.

  그렇게 20분 정도 했을까? 갑자기 간부 한 명이 들어오는 것이었다. 다름 아닌 어제 그 간부였다. 가슴이 철렁. “이 자식 너 안 되겠다. 따라 나와!!”라는 고함소리에 뭔가 잘못 되어 감을 느꼈다. 아니, 그 고함 한 번으로 내가 뭘 잘못했는지 스스로 알게 되었다. 어제는 그렇다 쳐도 오늘은 정말 할 말이 없지 않은가? 연달아서 잘못을 저질렀다는 부끄러움과 뒤통수가 땅겨 올 때 얼른 자리를 뜰 껄 하는 후회가 겹쳤다. 

  그렇게 행정반에 가서 진술서를 썼다. 남의 일 같기만 하던 진술서를 쓰게 된 것이다. 그것도 정식으로 소속이 바뀐 지 며칠 만에 두 번의 잘못을 줄줄이 저질러 안 받아도 되는 관심을 독차지해 버렸다. 진술서를 쓰고 교회에 돌아오니 내 사수도 한 소리 했다. 들어 마땅한 이야기이다. 주임 원사도 나를 벼르고 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이틀 연속으로 이런 일이 터지니 마음이 움츠려든다. 여단 군종병이라는 보직 때문에 더 그렇다. 믿는  사람에 대한 불신자들의 기대에 큰 실망을 안겨줬으니 말이다. 군대는 다른 어느 곳 보다 첫인상이 중요하고, 군종병은 교회에 있는 시간이 많아 한번 눈에서 어긋나면 만회하기도 힘든데 벌써부터 이렇게 되어서 찹찹하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다. 정말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하는 건 바로 내 모습의 변화이다. 하나님 앞에서 내가 어떤 진술서를 써야 하는지가 더 중요한 문제다. 

  작년에는 그랬다. 다른 사람들보다 성실하고 정직하게 열정적으로 살고 그 가운데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사람.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본이 되는 사람. 부족했지만 적어도 그런 사람이 되기를 늘 마음에 두고 살았다. 그리고 노력했다. 내가 군종병이 된 것도 그런 내 마음의 중심과 부족한 노력을 기특하게 봐 주신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 내 모습은 어떤지. 여기서 말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명백하게 나는 어긋나있다. 앎과 행함의 불일치, 믿음과 삶의 괴리, 냉정과 열정 사이. 내가 가장 싫어하는 그 모습을 지금 내가 똑똑히 보여주고 있다. 그놈의 속삭임에 조금씩 타협하고 있었다. 요즘 들어 특히 말이다. 어제 오늘 벌어진 일들이 아니었다면 그런 내 모습을 돌아보기 힘들었을 것이다.

  군종병으로 있었던 두 달 동안 어느 때 보다 많이 성장했음을 느낀다. 성경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고, 좋은 책들 보면서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더 깊어졌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의 내 삶에는 간절함이 없다. 어떤 목사님이 그렇게 강조하셨던 거룩한 야성을 잃은 것이다. 교회 앞에 어슬렁거리는 희멀건 눈의 흑염소처럼 유유자적하고 있다. 건전지 다된 카세트에서 흘러나오는 클래식 음악 같은 생활이다.

  “교회 관리인의 삶, 하나님 집에서의 시집살이가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런 기회를 주심을 감사합니다. 주님의 종이라는 사실 잊지 않고 손발이 다 닳도록 부지런히 일하겠습니다. 지켜봐 주십시오.”  군종병이 되면서 품었던 마음가짐, 두 달도 안 된 결심이다. 그 초심을 회복해야겠다. 

  휴가 갔다 온 후로 내 모든 관심이 외부로 쏠려 있다. 지난날의 추억, 전역 후의 삶, 애물단지 동아리, 의전대와 수화통역사 준비 등등. Simple해 지지 않으면 Sinful해 진다는데, 그 말이 참말이다. 단순하면서 깊이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 무뎌진 내 절제력과 판단력을 날카롭게 다듬어야겠다. 그리고 어제도 내일도 아닌 오늘을 간절히 살아야겠다.

  적절한 타이밍에 진술서를 쓰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부대에 돌아가면 몇몇 이들이 곱지 않은 시선들 보낼 터인데, 모두들 그 시선 거두시라. 앞으로 열심히 할 테니까. 그리고 군종장교가 전출 갔어도 하나님은 전출 안 가셨다는 사실을 절대로 잊지 말아야겠다.


  2007. 3. 9


반응형

'사람 : 삶 이야기 > 2004-2010 대학 & 군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욥기 23장 10절 다시보기  (1) 2015.03.01
크리스천의 고난  (0) 2015.02.26
가장 큰 기도응답  (0) 2015.02.26
빛 가운데로  (0) 2015.02.26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0) 2015.02.26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네이버 밴드에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