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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는 감염내과를 돌고 있는데, AIDS 환자를 내 담당 환자로 맡게 되었다. 나는 동성애를 반대하지만 동성애자들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마음이 열려 있다. 고 생각해 왔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아프리카에서 AIDS인 아이들도 종종 만나서 거부감이 없을거라 생각했지만, 막상 동성애로 인해 AIDS를 가지게 된 환자를 직접 만나보니 맘이 편치 않았다.

첫 날 회진 때 레지던트 따라 그 환자의 방으로 우르르 몰려 들어갔다. 그때 우리를 힐끗힐끗 쳐다보던 그의 불안한 눈빛. 그 눈빛 하나 만으로도 거부감이 밀려 올라왔다. 내가 이렇게 homophobia가 있다는 사실이 당황스러웠다.

어제 저녁 일과를 마치고 퇴근하는 길에 그의 병실로 갔다. 병실 앞에서 어떻게 면담을 해야할지 한참을 고민하다 들어갔다. 그는 일주일 전에 HIV 감염을 진단 받았다. 최근에 체중이 눈에 띄게 많이 빠졌단다. 혓바늘 때문에 밥을 잘 못 먹어 그런거라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검사를 해보니 CD4+ count가 엄청 떨어져 있었고 다른 질환들을 어제부터는 계속 딸꾹질을 하는데 쉽게 그치지가 않아 잠을 자기가 너무 힘들단다. 그의 쾡한 눈을 보며 맘이 아팠다. 옆에서 간호중인 어머니는 밥을 조금만 먹어도 토하고 바짝 말라가는 아들이 그저 애처롭기만 하다.

그렇게 환자와 그의 어머니와 한참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면서 내 마음의 벽도 어느새 사라졌다. 이야기는 대부분이 병력에 관한 것이었지만, 대화하면서 내가 가진 편견 이면에 가려져 있던 그분의 모습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알고보니 그는 불안한 눈빛으로 눈을 흘기는 사람이 아니라 밝고 따뜻한 사람이었다. 어머니와 누나가 너무나 아끼고 사랑하는 아들이자 오빠였고, 빨리 나아서 건강하게 살아갈 날이 더 많은 젊은이었다. 그걸 가까이서 느끼고 나니 AIDS니 동성애자니 같은 불편한 사실들이 내게는 더이상 대수롭지 않게 여겨졌다.

오늘도 환자를 찾아갔다. 식사를 계속 못하고 있는 것이 맘에 걸려 요플레와 음료수를 손에 들고. 그는 계속되는 딸꾹질에 잠을 못자다가 이제 겨우 눈을 붙이고 있었다. 어머니는 그런 아들을 짠한 눈으로 바라보고 계시며 자신도 아무것도 드시지 않았다고 그러셨다. 어머니가 건강하셔야지 아들이 더 빨리 낫는다고, 그러니 어머니라도 밥은 꼭 잘 챙겨드시라고 말씀 드리고 나오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하루 빨리 아들과 어머니가 함께 식사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자주 찾아뵙고 마음으로 기도하련다.

2014. 8.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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