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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푹 쉬고 있으면 정말 좋은데 정말 심심하다. 영화보고 오락하고 (서른이 넘으면 오락실 안 갈 줄 알았는데..) 동네 한바퀴 산책하고 이것 저것 하지만 금방 또 심심해진다. 그러다 보면 결국 하는 일이 옛날 일기나 사진 보는건데, 이건 볼 때 마다 새롭고 재밌어서 이걸로 심심함을 달래곤 한다.

요즘 노량진에서 공부한다고 맨붕 중인 내 동생 때문인지 어제는 10년 전 재수시절을 흔적들을 뒤적였다. 그때의 기억이 하나 둘씩 살아나면서 피식 피식 웃음도 지어지고 이미 장가갈 나이가 된 내가 낯설게 느껴졌다. 연습장 쓰는 스타일은 어떻게 10년 전에도 그대로였는지. ADHD가 아닌가 싶을만큼 무아지경인 공부 흔적들을 보며 피식 웃었다.

그런데 정신 없는 끄적거림 중간 중간 이런 낙서가 있었다.

세상은 동전의 앞뒤면 처럼 아름다움과 추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내 손으로 이 추함을 감싸 쥐련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을 보며 그리고 그 아름다움을 위해 살아가고 싶다. 의사가 되어서.. 추함에 억눌린 아름다운 사람들을 위하여..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그 꿈을 닮아간다." 내 책상에 적혀져 있는 글이다. 이 말이 이제서야 가슴에 와 닿는다. "미래도 언젠가는 현재가 될 것이고, 지금의 현재가 그렇듯 대수롭지 않게 여겨질 것이다." 지금 내 모습은 옛날에 내가 바라던 내 미래일까? 2년 전 내가 의대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그걸 말하고 다녔을 때 친구들은 비웃었고 선생님은 할 말을 잃으셨다. 이게 내 시작이다. 참 막막 했었는데.. 그 뒤로 내 꿈을 잊은 적이 없고 포기한 적도 없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 두 낙서들을 보면서 이런 저런 생각이 많이 들었다. 난 왜 그렇게 의사가 되고 싶어 했을까? 그때 내가 그렸던 의사의 모습과 지금 내가 생각하는 의사의 모습은 무엇이 다를까? 지금 내가 꿈꾸는 것은 무엇일까? 

그때 너무나 간절히 원했던 미래는 아무렇지 않게 느껴지는 현재가 되었다. 도대체 나 같은 사람이 뭘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늘 가지고 살았던 나는 이런 미래를 꿈꿔보지도 못했었다. 그저 앞으로 살아갈 날이 캄캄했고, 열등감과 패배의식에 뜬 눈으로 잠을 뒤척였으며, 내 한계를 극복하려고 아둥바둥 몸부림 치다 금새 지쳐버리곤 했었다. 

그래도 결국 여기까지 왔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보다 더 성숙하고 건강해졌다. 이제는 나도 뭔가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기고 더이상 나 자신의 부족함을 수시로 묵상하며 자책하지도 않는다. 그저 하나님이 내게 주신 달란트를 아낌없이 잘 사용하고 싶다는 마음,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고 내게 주어진 삶을 성실히 살아내고 싶다는 생각으로 살고 있다. 예전의 그 힘들었던 시간을 두고 이제는 감사할 수 있다는 사실이 정말 감사하다.

하지만 이 감사가 감사에서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요즘 이곳 저곳에서 들리는 사회의 더럽고 추잡한 이야기들을 듣고 있으면, 이 사회에 과연 희망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가해자도 결국 피해자인 이 비루하고 바보 같은 게임은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든다. 그러나 여기에 익숙해져 이것이 끝인 것 마냥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추함을 두려움 없이 끌어 안지는 못하더라도 멀찍이서 비관하고 욕하는 사람이 되지는 말자.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세상에 압도당해 나도 그냥 그렇게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그렇게 노력했던 그 이유를 실천하며 이제는 10년 전 나와 같은 막막함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힘이 되어 주고 싶다. 이제 그럴 때가 되었다.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아직 막막하지만 적어도 더 가져야 줄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도 충분히 내가 가진 것이 많다.

이제 새로운 일기를 써야 할 시간이다.

2014.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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