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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주가 지나가고 여유로운 주말이다.

이번 주에는 마음사랑 병원에 파견을 다녀왔다. 대학병원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랐고 만성 환자들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여기도 다양한 형태의 schizophrenia와 bipolar, MDD가 대부분이었지만 dementia나 parkinson disease 같은 노인성 질환 그리고 alcoholism 등의 다양한 환자군도 있었다. 물론 내가 만난 분들은 거의 person with schizhophrenia 였다.

인상 깊었던 분은 부인을 바람을 핀다고 의심하는 jealous type의 delusional disorder 환자이다. 듣는 나 자신부터 사실 여부가 궁금해질 정도로 아주 체계적이고 그럴듯한 망상을 나눠주셨는데 진짜 무슨 막장 드라마를 듣고 있는 것 같았다는.. 망상장애 환자는 주로 피해망상, 관계망상, 만성적인 의심을 보이며 중년기 이후 남자에게서 주로 발병한다. 이분이 딱 그런 케이스이다. 그분의 견고한 망상을 듣고 있다 보니 숨이 탁탁 막혔다. 원래는 환자의 망상에 긍정도 부정도 아닌 자세로 다가가야 한다는데, 그 이야기가 정말 망상인지 궁금한 나머지 이런 저런 예민한 질문들을 던져 봤다. 그러니 정색을 하시며 그렇게 생각하시면 선생님이랑 더이상 할 이야기가 없다고 그러셨다. 그 모습을 보며 망상장애 환자가 왜 치료가 어려운지 알 것 같았다.

한 사람 더 기억나는 분은 날 볼 때마다 반갑게 인사하고 표정이 살아있었던 mental retardation 환자이다. 뭔가 익숙하다 싶어서 한참을 지켜봤는데 알고 보니 수화를 못하는 농아인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손짓 발짓 표정으로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면서 금방 가까워질 수 있었다. 할아버지는 청각장애, 지적장애를 가지고 있고 보호시설에서 살고 있는데 최근 충동조절이 잘 안 되는 모습을 보여 병원에 입원하였다. 그런데 입원 기록을 살펴보고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아저씨가 여기까지 와야 하는 상태인지에 대해 의문이 들었다. 물론 이것만 가지고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청각장애인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는 의사가 진단을 내렸다면 필요 이상의 진단이 내려질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진료실 안 뿐만이 아니라 진료실 밖에서의 경험도 정신과 의사에게는 정말 중요한 것 같다. 내가 경험한 세상만큼 그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수요일에는 정신보건 센터를 방문했다. 정신질환자 예방, 조기발견, 치료, 재활 그리고 사회복귀 등의 목표를 가지고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자살예방 사업도 다른 어떤 지역들보다 활발히 진행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나도 훗날 정신과 전문가가 되어 이분들과 함께 일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우리나라가 OECD 국가 중에서 자살률 1위를 고수하고 있다는 것은 너무 많이 들어서 익숙한 이야기다. 그리고 WHO가 2020년에 우울증이 장애를 일으키는 모든 질환 중 2위를 차지할 거라고 예측하고 있는데, 자살기도자의 50~70% 정도가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이는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의학의 주 목적이 생명을 살리고 풍요롭게 하는 것이라면 자살을 예방하는 일이 앞으로 다른 어떤 의료 분야보다도 중요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내겐 정신과가 참 매력적인 것 같다.

10년 전, 내가 앞으로 어떤 일을 하게 되든지 가난하고 소외되고 병든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다고 기도 했었다. 정신과에서 3주 동안 실습을 하면서 그동안 잊고 있었던 그 옛날 기도가 계속 떠오른다. 지금 내가 만나고 있는 분들이 내가 함께 하고 싶다고 기도했던 그런 분들이 아닐런지..

매화꽃 필 무렵 새로운 배움과 기대에 마음이 들뜬다.
 

2014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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