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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Unt3m1w7xk8

 

“우리는 아플 때 의사에게 증상을 말하고 치료 받습니다. 당연한 것인데 청각 장애인들에게는 어렵고 잘못 전달돼 오진이 나기도 합니다. 청각 장애인이 27만 명, 그러나 이들을 도울 수화 통역사가 있는 병원은 전국에 3곳뿐입니다.”

 

이 뉴스기사를 보면서 두명의 환자가 생각났다.


한명은 인턴 때 중환자실에서 만났던 농아인 아주머니였다. 의사소통이 안 되고 팔을 휘저으며 이상한 소리를 내어 강박을 해놨던 환자. '당신 농아인이에요?' 라는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고, 팔을 풀어준 후 내게 처음으로 한 말은 '목이 마르니 물 좀 달라'였다. 그 말을 하고 싶어서 소리를 내고 팔을 흔들었던 것인데, 다들 뇌경색 후 섬망이라고 오해를 했었던 것이다. 팔을 풀고 내일이면 물을 먹을 수 있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곤히 잠드는 모습을 보며 울컥했던 기억이 난다.

 

다른 한분은 40년간 투석을 받아온 농아인 할아버지다. 혈액형이 다르면 이식을 못하는 줄 알고 포기하셨다가 올해 초 가능하다는 소식을 듣고 신장이식을 결심한 분이셨다. 그러나 고령에 혈관상태가 안 좋아서 타원에서는 이식을 거부하였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우리 병원으로 오셨는데 때마침 내가 주치의였던 것이다. 주치의가 수화를 할 줄 안다는 사실 만으로도 그분과 가족분들이 든든해 하셨고, 나 또한 평소엔 잘 느끼진 못했던 가슴 벅찬 보람을 느꼈다.

 

하지만 결과는 우리가 간절히 기대했던 것과는 달랐다. 몇 개월 뒤 예정대로 수술을 진행했는데, 수술 후 예상치 못한 합병증이 생겼고 할아버지의 상태는 하루가 다르게 악화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난 장례식장에서 기증자였던 아내분과 따님을 위로해야 했다. 너무 마음 아픈건 따님이 아직도 아버지의 일이 자기 탓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수술 전후로 호소했던 증상들을 자신이 잘 전달하지 못해 합병증을 막지 못한 탓이라며 지금도 밤잠을 이루지 못한다.

 

의료의 사각지대에 있는 농아인들.
‘누군가 해결하겠지’ 하지만, 그 누구는 누구일까. 
나부터 시작해야 한다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2019. 6. 24

 


이날 이후로 청각장애인의 건강권에 대한 영상을 꼭 찍고 싶었는데, 때마침 이준수 선생님께서 좋은 제안을 해주셨다.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세심하게 배려해주시고 잘 이끌어 주셔서 마음 편하게 준비할 수 있었다. 언제든 같이 일하고 싶은 귀한 분이다. 

 

대본 작성이 쉽지 않았는데, 서울의료원 수어통역사 김미숙 선생님과 대학교 수어동아리 선배이자 수어통역사인 최재호 선생님이 많은 도움을 주셨다. 수어통역과 감수는 청각장애인과 함께하는 청함교회 이은선 집사님과 모상근 목사님께서 맡아주셨는데, 내가 보기엔 더할나위 없는 수어통역이다. 

 

이 영상이 농아인들의 어려움을 사회에 알리는 작은 마중물이 되면 좋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농아인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힘과 위로가 된다면 바랄 것이 없겠다.

 

2021.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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