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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아플 때 의사에게 증상을 말하고 치료 받습니다. 당연한 것인데 청각 장애인들에게는 어렵고 잘못 전달돼 오진이 나기도 합니다. 청각 장애인이 27만 명, 그러나 이들을 도울 수화 통역사가 있는 병원은 전국에 3곳뿐입니다.”

 

이 뉴스기사를 보면서 두명의 환자가 생각났다.

 

한명은 인턴 때 중환자실에서 만났던 농아인 아주머니였다. 의사소통이 안 되고 팔을 휘저으며 이상한 소리를 내서 강박을 해놨던 환자. '당신 농아인이에요?' 라는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고, 팔을 풀어준 후 내게 처음으로 한 말은 '목이 마르니 물 좀 달라'였다. 그 말을 하고 싶어서 그렇게 소리를 내고 팔을 흔들었던 것인데, 다들 뇌경색 후 섬망이라고 오해를 했었던 것이다. 팔을 풀고 내일이면 물을 먹을 수 있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곤히 잠드는 모습을 보며 울컥했던 기억이 난다.

 

다른 한분은 40년간 투석을 받아온 농아인 할아버지다. 혈액형이 다르면 이식을 못하는 줄 알고 이식을 포기하셨다가 올해 초 그게 가능하다는 소식을 듣고 이식을 결심한 분이셨다. 그러나 고령에 혈관상태가 안 좋아서 타원에서는 이식을 거부하였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우리 병원으로 넘어오셨는데 때마침 내가 주치의였다. 주치의가 수화를 할 줄 안다는 사실 만으로도 그분과 그 가족분들이 든든해 하셨고, 나 또한 평소엔 잘 느끼진 못했던 가슴 벅찬 보람을 느꼈다

 

하지만 결과는 우리가 간절히 기대했던 것과는 달랐다. 몇 개월 뒤 예정대로 수술을 진행 했는데, 수술 후 예상치 못한 합병증이 생겼고 할아버지의 상태는 하루가 다르게 악화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난 장례식장에서 기증자였던 아내와 그분의 딸을 위로해야했다. 너무 마음 아픈건 그분의 딸이 아직도 아버지의 일이 자기 탓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수술 전후로 호소했던 증상들을 자신이 잘 전달하지 못한 탓이라며, 그래서 합병증을 막지 못했다며 지금도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

 

의료의 사각지대에 있는 농아인들.
누군가 해결하겠지 하겠지하는
그 누구는 누구일까.

 

나부터 시작해야 한다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까.

 

2019.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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