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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토요일에 지하철을 기다리다 농아인 세 분이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보았다. 수화를 오랫동안 쓰지 않았지만 그래도 아직 농아인들의 가벼운 대화 정도는 알아 '볼' 수 있기 때문에 그분들의 대화를 슬쩍 슬쩍 지켜보았다. 그렇게 한참을 보다가 문득 농아인들 입장에서는 그렇게 쳐다보는 내가 좀 신경 쓰일거 같기도 하고, 어쩌면 기분이 나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 시선을 의식하는 농아인에게 활짝 웃으며 인사를 건냈다.

 

전에도 길에서 만난 농아인들에게 그렇게 인사를 한 적이 몇 번 있었는데, 그럴 때 마다 반응은 대게 비슷했다. 처음 하는 말은 "당신 농아인이에요?" 그럼 나는 "아니요 저는 건청인 입니다."라고 대답한다. 그러면 다음 질문은 "그런데 수화를 어떻게 할 줄 알아요?"인데 거기에 대답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대화가 시작된다. 수화를 아는 것 만으로도 대부분의 농아인들은 친밀감을 느끼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눠 주시곤 한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고 전주로 내려오는 길에 여러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4년 전 대학원에 입학하고 내 생활에 달라진 것이 두 가지 있다면, 매주 한 두번씩 꼭 했던 축구를 거의 하지 못한 것 그리고 농아인을 만나 수화를 쓸 일이 없었다는 것이다. 1학년 1학기 때는 전주에 있는 농아인 교회에 출석을 했었지만 바쁜 학업과 장거리 연애를 핑계로 계속 나가지 못했었고,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농아인들과 그분들의 언어인 수화와 멀어졌다.

그 후로 나는 '국제보건' '소아외과' 같은 새로운 분야들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그러면서도 마음 한 편에 아닌 척 하고 싶은 미안함이 있었다. 내가 있어야 할 자리, 내게 주어진 자리를 떠나 있는 것 같은 미안함이었다. 그리고 지난 주 농아인들과 대화를 나눈 후로는 그게 더 심해져 마음에 묵직한 짐 하나가 놓여 있는 기분이었다. 그 때 마침 내 멘토 한 분이 전화를 주셨다. 광주에 있는 한 교회에 농아인 한 분이 출석하시는데 거기 가서 통역 한 번 해줄 수 있겠냐고. 그 이야기를 듣고 바로 가겠다고 했다. 그냥 가야할 것 같았다.

광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목사님께서 좀 전에 보내주신 따끈따끈한 설교문을 보면서 통역 연습을 해봤다. 오랜만이라 생각이 안 나는 단어들이 좀 많아서 재호형에게 도움을 청했다. 역시 바로 바로 친절하게 답해주고 화이팅을 외쳐주는 재호형 역시 최고! 설교 본문 중에서 통역이 까다로운 부분은 어떻게 바꿔야 할지, 어떤 부분이 중점을 두고 강조해서 통역해야 하는 부분인지 생각하다 보니 어느새 광주에 도착했다.

대략 40~50명이 모이는 작은 교회에 농아인 한 분이 앉아 계셨다. 구석으로 자리를 옮겨 이런 저런 잡담을 나누다 예배를 시작했다. 많이 버벅거리긴 했지만 버스에서 내용 파악을 하고 들어가서 그런지 통역이 많이 어렵지는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거기에 수화를 아는 사람이 나 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일단 통역하는 내내 마음이 편했다. 그 아주머니 한 분만 잘 이해시키면 되니까 손수화던 발수화던 어떻게든 표현해서 내용을 전달하기만 하면 됐다. 내가 설교 내용을 얼마나 요약해 버렸는지, 중간에 의역한 부분은 얼마나 많은지 정말 아무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통역을 잘 마쳤다. 농아인 아주머니는 오랜만에 대화가 되는 사람을 만나서 기분이 좋으셨는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마구마구 쏟아내셨다. 손도 같이 신이 나서 더 빨라졌다. 영어는 리스닝보다 스피킹이 어렵지만 수화는 스피킹 보다 리스닝(=리딩)이 더 어렵기 때문에 예배 후에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다. 집에 갈 때가 되니 토플 시험을 본 후의 상태와 비슷했다. 아쉽지만 매주 오지는 못한다고, 그래도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오겠다고 약속을 하고 다시 전주로 향했다.

참 오랜만인 것 같다. 이렇게 주저리 주저리 글로 남기고 싶은 하루를 보낸 것이. 사실 이렇게 길게 쓸 이야기는 아니었는데 많이도 적었다. 내일은 또 눈을 반쯤 감고 출근하고 하루종일 KMLE 몇 장 못 풀었다며 스스로 머리를 쥐어 박겠지만, 오늘 하루만큼은 나 자신이 참 멋있고 대견스럽다.

내게 주어진, 내가 있어야 할, 하지만 그곳에 있지 못해 늘 미안했던 그 자리에 이제 자주 가봐야겠다.

201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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