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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술방에선 누구나 약해진다

“공 찬다”도 아니고 "축구한다"도 아닌 "축구 찬다"는 전문 용어를 구사하는 남자들이 종종 있다.

내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그는 비록 축구를 못할지언정 남자 냄새가 나는 호탕한 인간일 가능성이 높다. 내게 그런 용어를 썼던 사람은 대부분 축구를 사랑하는, 몸에 그림을 그리신 형님들 또는 배 나오고 머리는 벗어졌으나 체력은 무시무시한 조기 축구회 아저씨들이었다.

어제 수술했던 남자 환자 한 명이 사투리를 팍팍 쓰면서 축구 차다가 허리를 다쳤다고 말하는데 그 순간

‘응? 축구 찬다?!’

​순식간에 동질감을 느꼈다. 마치 함께 운동장을 한없이 뛰어다니며 쿨피스로 가슴을 적신 후 목욕탕에서 노곤함을 풀었던 그 옛 친구의 느낌이랄까. 함께 축구 차고 쿨피스 대신 옆에서 다방 아가씨가 타주는 냉커피를 건네었던 그 형님들의 느낌이랄까. 그는 그런 남자임이 분명해 보였다.

​수술 대기실에 그 환자를 데리러 갔다. 눈시울이 빨개져 있길래 나는 추호의 의심도 없이 하품을 크게 해서라고 생각했다. 어? 환자분 설마 우시는 거 아니죠? 흐흐” 라며 장난스럽게 말도 건네고 그랬는데...​

아... 이런... 그는 울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수술장 복도에 들어서는 순간 그는 다시 울음을 터트렸다. 자기가 그렇게나 건강했는데 이렇게 허리도 아프고 갑상선암도 생겨서 휠체어 타고 수술방으로 가고 있으니 너무 속상하다며 눈물을 훔쳤다.

순간 얼마나 짠하면서 당황스러웠는지. 얼른 휴지를 뽑아 드리고 이런저런 말로 달래 드리면서 강한 대나무일수록 잘 부러지는구나, 남자든 여자든 이 수술장에서는 다 마음 약해지는구나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그 후로 수술방을 향하는 환자들의 표정들이 왜 더 애처롭게 보이는지 다들 글썽글썽 사슴 눈망울이었다.

오늘 회진을 가니 그분은 목이 아직 좀 불편하지만 조금씩 괜찮아지고 있다며 멋쩍은 듯 씩 웃어 보였다.

그 축구 차는 형님의 뜻밖의 눈물 덕분에 수술장 가는 길 환자들이 어떤 기분일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됐다. ​


2016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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