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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사고로 고관절 탈구가 된 환자가 왔다. 학생 때 (환자는 많이 아파하고 결국 실패하는) 리덕션을 본 적은 있지만 직접 해본 적은 없어서 난감했다. 응급실에 이걸 해결할 사람이 없는 상황이어서 고민 끝에 그냥 전원을 보내려고 하던 찰나 응급실 기사님이 가만히 오시더니 자기가 도와 줄테니 같이 해보잔다.

처음에는 내가 알고 있는 교과서적인 방법으로 시도해 봤는데 땀만 뻘뻘 나고 어림도 없었다. 그러니 갑자기 기사님이 환자의 자세를 바꾸고는 이렇게 해보라고 알려주셨고 몇 초 지나지 않아 "뚝" 하는 소리와 함께 고관절이 제자리를 찾았다. 내회전 되어 있는 환자의 다리가 곧게 펴지면서 환자의 표정도 같이 펴지는 것을 보는데 기분이 정말 좋았다.

지역 병원에서 일을 하다 보면 최선과 차선이 아닌 최선과 최악 사이에서 고민하게 되는 것 같다. 고관절을 빨리 리덕션 해서 환자를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 최선, 그걸 잘하는 한두 시간 거리의 병원으로 보내는 것은 차선, 그리고 어설프게 리덕션 시도하다가 환자가 다치는 것이 최악인데. 최선을 위한 내 최선이 최악의 결과를 가져올 것이 두려워 차선을 선택하려는 유혹이 자주 생기는 것 같다. 그게 안전하고 편하기 때문에. 그런데 그렇게 계속 안전한 차선만 선택하게 되면 나는 환자에게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안전한 차선에 대한 유혹을 이겨내려면 결국엔 더 많이 배우고 경험하는 수 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용기를 내고 실수를 줄이기 위해 능숙한 슈퍼바이져가 필요한 것인데 뜻밖에도 이번에 내겐 응급실 기사님이 그런 분이셨다. 오늘 밤에 출근하면 커피 한 잔 사드려야겠다.

2016.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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