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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어머니는 15년전 고관절 수술을 받으셨다. 오늘 잠시 어지러워 쓰러지시면서 엉덩방아를 찧었는데 그 뒤로 통증이 너무 심하다고 하셨다. 근처 병원에 가서 사진을 찍어보니 이전에 수술한 부위에 골절이 생겼다. 수술을 받았던 서울소재 대학병원에 연락해보니 그때 수술한 선생님은 없으시다고 강릉아산병원에 가보란다. 그래서 여기에 왔더니 사진 몇장 찍고서는 우리는 수술 못하니까 그때 수술한 병원으로 가란다. 그리고 가도 바로 수술은 안 될거고 짧으면 며칠, 길면 일이주 기다려야 한다면서. 솔직히 내가 돈만 많으면 수술을 언제 받든 상관 없이 바로 출발했겠지만 솔직히 말해 그럴만한 여유가 없다.

그래서 여기에 수술 날짜 잡힐때까지 있다가 가면 안되냐니까 그건 안된단다. 왜 안되는지 설명도 없이 안 된다고. 그럼 강릉의 다른 병원에 있다가 간다니까 그것도 안된다면서 그럴거면 자의퇴원 서약서인가 뭔가를 적으란다. 그 말을 듣는데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랐다. ...니들 부모면 그런 식으로 내쫓겠냐고, 뭐 이딴 병원이 있냐고 소리질렀다. 사실 그건 능력없는 나 자신에 대한 분노였는지도 모르겠다. 어머니는 아파서 저러고 계신데 병원비 신경쓴다고 이곳 저곳 알아봐야 하는 내가 너무 싫고 못나게 느껴졌다.

그렇게 화내는 내게 젊은 의사놈이 다가왔다. 와서 잠깐 이야기를 들어주는척 하더니 자의퇴원서에 싸인을 하란다. 서울쪽 병원에 가면 되지 왜 그렇게 고집을 부리시냐고, 우리가 받기 싫어서 안 받는게 아니라고, 돈 아끼시려고 지금 이러시는거면서 왜 그 책임을 우리한테 돌리시냐고.. 따박따박 쏘아 붙이는 그 의사놈과 말을 더 섞기 싫어서 싸인을 해버렸다. 싸인을 받은 그녀석은 "보호자분! 도대체 뭘 가지고 우리 병원에서 시위를 한다는 말씀이세요? 보호자분이 자기 맘대로 하시면서 그걸 우리 탓으로 돌리는거에요? 덤탱이 씌우고 그러시지 마세요"라고 사납게 한마디 하고는 사라졌다. 이해한다는 말, 이렇게 돌려보내서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도 없이, 앞으로 뭔가 잘못되면 모두 내 책임이라는 그 종이 한장 가지고 사라졌다.

엠뷸런스에 타니 여전히 아파하는 어머니가 나만 물끄러미 쳐다보고 계시는데 그냥 눈물만 흘렀다. 그래 내 잘못이다. 아픈 어머니를 두고도 돈 생각해야 하는 가난한 내가 잘못이다. 그게 쪽팔려서 병원 탓하는 내가 못난 놈이다.

이제 우리는 어디로 가야할까..


나도 모르게 젊은 의사놈이 되어버렸던 오늘. 그 당시에는 고함치며 화내고 있는 그 보호자를 보며 뭐 저런 인간이 다 있나 생각했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사람들도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들고 나도 날카로워져서 보호자를 쏘아 붙였는데.. 돌아서서 생각하니 후회가 많이 된다. 내가 틀린말 한 건 없지만 틀리지 않다고 다 맞는건 아닌 것 같다. 다음에 이런 일이 생기면 그 분노를 들어줘야겠다. 그 분노 속에 있는 진짜 이야기를 읽으려고 노력해야겠다.

2016. 5.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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