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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에는 영어통일캠프(EUC)에 의료팀으로 일하고 있다. 진짜 아는 것이 거의 없기 때문에 마음이 걸렸지만 필리핀에서 기초적인 진료를 해봤고 없는 것보다는 있는게 도움은 되겠다는 생각에 참석했다. 아버지는 자신이 학교 다닐 때 보건실 일은 체육선생님이 담당하곤 했다며 가볍에 하고 오라고 그러셨다.

 

이틀 동안은 단순한 감기나 편도선염, 소화불량, 타박상 등등이 대부분이어서 별 어려움이 없었다. 사실 제일 어려운 일이 여자애들한테 생리대를 주는 것일만큼 쉬웠다. 보건실에 있다보니 심심하게 있다 보니 장사 안 되는 개원의가 된 기분도 들었고.. 별거 아닌데 고마워 하는 애들을 보면서 은근 어깨가 으쓱하기도 했다. 10분 거리에 종합병원도 있고 그러니까 myocardial infarction 같은 위급한 상황.. 만 없으면 남은 3일도 별 탈 없이 지나가겠지..

 

그런데 오늘 아침에 일이 터졌다. 늦잠을 자고 어슬렁 보건실로 내려가고 있는데 갑자기 전화가 왔다. 누가 쓰러졌다네? 1층으로 내려가 보니 50대 백인 아저씨가 밴치에 누워서 땀을 비오듯이 흘리면서 고통스러워 하고 있었다. 증상을 물어보니 가슴이 쥐어짜듯이 아프고 등과 왼쪽 어깨에 방사통이 있으며 토할 것 같은 느낌이라고 그러셨다.

 

MI 같았다. 수업시간에 어떤 교수님께서 "환자가 들어와서 이야기를 들어보면 야마를 줄줄줄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셨는데 바로 이런 상황을 보고 말하는 것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주변 분들이 빨리 상황대처를 해주셔서 테리 아저씨는 바로 가까운 병원으로 후송되서 ECG를 찍고 MI인 것을 확인한 후 응급처치를 받았다. 그리고 40분 거리에 있는 아주대 병원으로 후송해서 바로 스텐트 삽입술을 받았고 다행히 지금은 코를 골면서 주무시고 계시다. 합병증이 있을 수 있으니 며칠 더 지켜봐야겠지만 MI가 엄청 응급상황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너무 감사한 일이다.

 

정말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환자는 곧 죽을 것 처럼 그러고 사람들은 내가 오니까 "Doc is coming" 그러면서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날 지켜보고 있는데 딱히 생각나는 것은 angina pectoris랑 MI 밖에 없고 이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는 아는 것이 없었다. 최대한 빨리 병원으로 후송하고 심장이 기능을 안하면 심폐소생술을 하라는 거 정도? 이 상황에서는 그게 답이었지만 만약 MI 아니라 다른 응급 상황이었다면 어땠을까? 그것도 제대로 된 의사가 있으면 살 수 있는 그런 응급이었다면 그 상황에서 난 정말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오늘 일로 느낀 점이 하나 있다. 사건 사고는 내가 의사가 될 때까지 기다려 주는 않는다는 것이다. 내 앞에서 응급상황이 터졌는데 그때 "난 아직 의대생이라서 모릅니다"라고 말할 것인가? 수업시간에 열심히 배우고 익혔으면 기본적인 처치라도 할 수 있는데 졸고 딴짓한 이유로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아 환자 한 명이 내 앞에서 죽어 나간다면? 거기서 "전 아직 의대생인데요"라는 말 한마디가 얼마나 부끄러울까.. 죽은 사람과 그 사람을 보내야 하는 가족 앞에서 무슨 위로를 할 수 있을까..

 

정말 진심 열심히 해야겠다!

2012. 7.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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