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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레지던트 지원을 했다. 사실 인턴을 지원할 때부터 외과를 생각했기 때문에 그때 자기소개서를 거의 복붙했다. 종종 막 살고 싶을 때 내가 여기 써놓은 글들이 나를 다잡는 계기가 되니 이 글도 그런 이유로 여기에 남긴다. 

 


 

[첫 기억 - 동경의 시작]

 

중학교 2학년 때 인도에서 3주간 의료봉사 활동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오래전 일이지만 끔찍하게 더러웠던 슬럼가와 진찰을 받기 위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던 많은 빈민, 그리고 그 사람들을 한 명 한 명 정성스레 진찰해 주셨던 의사 선생님의 모습은 아직도 잊히지 않습니다. 그 옆에서 콧물을 훔치며 열심히 약봉지를 접고 있었던 저는 그때 처음으로 다른 사람을 돕는 삶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농아인 - 아픔을 넘어서 소통으로]

 

그 후로 그런 동경을 구체화 시켜주는 경험들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농아인들과의 만남이었습니다. 대학 시절 수화동아리를 통해서 농아인들을 삶과 그분들의 언어를 조금씩 알아가게 되었습니다. 제가 만난 대부분의 농아인들은 가난하고 아프고 소외된 분들이었습니다. 그분들에게 작은 힘이 되고 싶어 동아리 친구들과 농아인 자녀교육, 수화교육 및 통역, 독거노인 돕기 등의 프로그램을 만들어 열심히 활동했습니다.

 

제가 그분들과 함께하면서 배웠던 것은 ‘사랑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몸과 마음이 아픈 분들과 동행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어려움과 비교할 수 없는 보람이 있었습니다. 죽기를 결심했다가 매주 찾아오는 제가 생각나서 마음을 돌리셨다는 독거노인 아저씨의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울었고, 수화통역을 하는 저를 흐뭇한 미소로 바라봐주시는 농아인들을 보며 함께 웃었습니다. 그 시간을 통해 ‘아픔을 넘어 소통하는 능력’과 ‘내게 주어진 자리를 지키는 끈기’를 배웠습니다. 그리고 누군가를 돕는 삶에 대한 막연한 제 동경은 장애인을 돕는 의사가 되겠다는 구체적인 꿈으로 바뀌었습니다.

 

[Mercy Ships - 대의(大醫)를 꿈꾸며]

 

제게 영향을 끼친 두 번째 경험은 머시쉽에서 일했던 것입니다. 머시쉽은 병원선을 이용하여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무료수술을 해주고 다양한 보건의료 사업을 하는 단체입니다. 저는 일주일의 반은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고, 나머지 반은 환자선별 작업이나 현지병원과 농아인 학교에서 활동했습니다. 40개국에서 온 다양한 봉사자들이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각자가 지닌 재능으로 협력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 영향력은 아프리카 지역 국가들의 보건의료 시스템에 큰 변화를 가져올 정도였습니다.

 

농아인과의 만남이 ‘장애인을 위한 의사’라는 꿈을 꾸게 했다면, 머시쉽에서의 경험은 ‘혼자 꾸는 꿈은 꿈이지만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또한, 이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변화시킬 대의(大醫)가 되려면, 단순히 환자를 잘 보는 것을 넘어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과 소통하고 협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저는 한국으로 돌아온 후 머시쉽 한국지부에서 인턴을 하였습니다. 그 당시 한국지부 인력이 많이 부족하여 저는 머시쉽 홍보에서부터 후원관리에 이르기까지 여러 일을 해야 했습니다. 그 분야에 아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대학동문들의 도움을 받으며 CMS 후원시스템과 새로운 홈페이지를 만들었습니다. 혼자였다면 할 수 없었던 일을 누군가와 함께 해결해 나가면서 팀워크의 소중함을 다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청년한동 - 변화를 도전하다]

 

‘청년한동’은 한동대학교 출신의 의료인 모임입니다. 회원은 200명 가까이 되지만 회원들의 소속감이 크지 않은 모임이었습니다. 머시쉽을 통해 팀워크의 소중함을 깨달은 저는 이 단체의 회장을 맡아 새로운 도전을 해보았습니다. 의료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단체로 발전하기 위해 꼭 해야 하는 일들을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함께 할 사람들이 하나 둘 모였습니다. 그 결과 작년부터 백 명 이상의 정기후원자가 생겼고, 그 후원금으로 외국인 근로자를 대상으로 의료봉사를 하고 두 번의 오픈세미나를 열었습니다. 비록 작은 일들이었지만 더 큰 일들을 기대하게 만드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또한 개인적으로 세미나의 연자로 초청했던 홀트아동 복지회 조병국 원장님과의 만남을 통해 그동안의 진로 고민을 끝내고 소아외과를 하기로 결심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특별한 경험 - 용기를 내다]

 

저는 본과 2학년 때 조혈모세포 기증을 했습니다. 이제와서 돌아보면 그렇게 위험한 일은 아니었지만, 그 당시에는 걱정이 많이 앞섰습니다. 특히 다양한 부작용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에는 내가 모르는 사람을 위해 이런 위험까지 감수해야 하나 싶었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의 생명이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용기를 냈습니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한 생명의 가치를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는 의사가 되고 싶습니다.

 

[연구 - 사랑이 동기가 되어]

 

저의 할아버지께서는 폐섬유증을 앓으셨습니다. 숨이 차 괴로워하시는 할아버지를 볼 때마다 너무 마음이 아팠고 무력함을 느꼈습니다. 그 시기에 본과 1학년 심화선택 수업에서 ER stress와 폐섬유증에 대해 배울 기회가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이 동기가 되어 폐섬유증에 대한 논문들을 찾고 읽으며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담당 교수님께서 그런 저를 보시고 자신과 함께 리뷰논문을 쓸 기회를 주셨습니다. 논문 작성에 참여하는 동안 제게 폐섬유증이라는 단어가 또 하나의 질병을 넘어 제가 이해하고 싶고 정복하고 싶은 신비한 생명 현상으로 다가왔습니다. 또한, 의사가 환자를 진심으로 위하고 아끼는 마음을 동기로 하여 연구할 때 그 연구를 지속해 나갈 보람과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런 의사에게 연구란 환자에 대한 관심과 책임감의 또 다른 표현인 것 같습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이전과 같지 않다.”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우리나라 최고의 연구 중심 병원인 서울아산병원에서 환자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가지고 끊임없이 질문하고 연구하며, 그 연구를 통해 답을 찾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답을 통해 이전보다는 좀 더 깊이 환자를 이해하고 더 치열하게 질병과 씨름하는 임상 의사로 성장하고 싶습니다.

 

[아산 - 그다음 이야기를 꿈꾸며]

 

저는 아산과 관련된 추억이 두 가지 있습니다. 첫 번째는 2010년에 제가 속한 수화동아리가 아산사회복지재단으로부터 아산 청년봉사상을 받은 것입니다. 이 상은 지금까지 제가 받은 상 중에서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상입니다. 두 번째는 서울아산병원에서 소아외과 서브 인턴을 했던 것입니다. 일 년에 한두 명 만나기도 어려운 케이스를 두고 각과의 교수님들께서 머리를 맞대어 토론하시고 힘을 합쳐 수술을 진행하던 그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제가 서울아산병원에 가고 싶은 이유는 이곳에서 그런 최고의 교수님들과 동료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제 꿈은 소아외과를 전공하여 장애가 있어 버려지고 소외당하는 아이들을 위해 일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수술로 그 아이들을 회복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그 아이들이 장애를 가지고도 당당히 살아갈 수 있는 건강한 사회를 만들고 싶습니다. 그 시작을 서울아산병원과 함께 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이곳에서 누구보다 겸손한 자세로 배우며, 최고는 아니더라도 최선을 다하는 의사가 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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