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2년 전 수화2 수업이 폐강된 후 이 수업을 다시 개설하는 일이 마음의 짐처럼 남아 있었다. 작년에는 수요가 너무 적어 엄두를 못 내다가 올해 소울10들이 많이 들어오고 나도 졸업이 얼마 안 남아서 이번 학기에는 꼭 이 일을 성사시키리라 마음 먹었었다.

 

수업을 듣겠다는 사람들 명부를 만들고 GLS 학부장님께 메일을 보냈다. 2년 전에 이 일로 몇 번 찾아뵌 적이 있다고, 다음 학기 수화2 수업을 교양특론으로 열었으면 좋겠다고, 자세한 사항은 만나서 말씀 드리겠다고, 그렇게 말씀드렸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답이 없었다. 당연히 교수님을 찾아가서 말씀 드리거나 다시 메일을 보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난 그렇게 하지 않았다. 소울에게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고 또 오랫동안 기다려온 이 일을 손에서 놓아 버렸다. 그 시기에 이런 저런 일들로 너무나 버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학기 말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 일을 놓아버린 것이 얼마나 후회가 되는지.. 지난 학기에 후배들이 정말 열심히 수화를 배워서 더 이상 내가 가르칠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래서 후배들을 위해서도 나를 위해서도 수화2 수업이 꼭 필요했다. 그 아이들의 실력이 놀랍게 향상될 것을 기대하면서, 그리고 그 실력을 가지고 성경을 수화로 번역하는 모습을 그려보면서 너무나 큰 기대감을 가졌었다. 그런데 그게 물거품이 되어버린 것이다. 소울에게 너무나 중요한 일을 놓버린 나 자신에 대한 원망을 떨쳐버리기가 너무 힘들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 수화2 수업이 짠! 하고 수강편람에 나타났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폐강된 과목은 교양특론으로 다시 개설해서 두 세 학기 정도 수요를 확인하고 다시 정식 과목으로 열 수 있는데, 이건 뭐 그냥 짠 하고 다시 생겨버렸다. 2년 전에 사라진 과목이 답장도 받지 못한 한 통의 메일로 다시 생길 수 있을거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이건 정말 하나님이 하셨다!

 

살다 살다 수강편람보다 울기는 또 처음이었다. 내가 귀하게 여긴 일을 하나님께서 더 귀하게 생각하고 계셨다는 것, 그리고 그 일을 내가 알지 못하는 놀라운 방식으로 이루셨다는 사실이 너무 감사했다. 내 마음의 무거운 짐도 어느새 사라졌다.

 

내가 힘들어 놓아버려도 하나님께 붙드시는 일이 있다는 것, 그것이 농아인과 소울과 관계된 일이라는 것이 지금의 내게 얼마나 큰 위로와 용기를 주는지 모르겠다. 천군만마를 얻은 느낌이다. 지난 학기 나와 성경번역학회 사람들에게 주셨던 성경번역의 마음, 그리고 너무나도 귀하게 성장하고 있는 동아리 후배들, 꽉찬 수화1 수업과 30명이나 되는 수화2 수강생(이전에는 10명을 넘긴 적이 없었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면서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계획하고 계신지 너무나 기대가 된다.

 

더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겠지만, 일단 지금 내 마음에 주신 것은 메세지 성경을 수화로 번역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걸 가지고 먼저 농아부에 있는 청년들과 함께 성경공부를 하고 싶다. 지금까지 복음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농청년들을 보면서 마음이 안타까웠지만 수화실력이 부족하다는 핑계로 시작을 못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해야겠다.

 

소울에서 그리고 한동에서의 마지막 학기여서 시작하는 일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주신 농아인 선교, 내가 앞으로 평생동안 할 일을 지금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수화2 수업은 하나님께서 이런 나를 응원하시며 함께 하신다는 의미로 주신 깜짝 선물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10. 8. 6

 

반응형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네이버 밴드에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