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오늘 묵상한 말씀에서 여리고성을 무너뜨린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이성을 앞에 두고 힘이 논리에 취해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들은 하나님께 해야 할 바를 묻지 않았고, 그 결과 여리고성의 10분의 1밖에 되지 않는 아이성을 함락하는데 실패한다.

 

그들의 모습이 나의 모습과 겹쳐젔다. 예수님을 믿고 나서 여리고성 같았던 내 인생의 여러 문제들이 무너지는 것을 경험했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였다. 그러나 내가 경험한 기적들이 나를 조금씩 교만하게 만들고 힘의 논리에 물들게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지금까지 만들어온 학점과 사회봉사 시간들을 보면서 마음이 든든했다. 영어성적도 곧 나올 것이고.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내 마음 속에는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가득차 있었다. 그러나 그 자신감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보셨을까. 내 힘으로 내 생각대로 그 모든 준비를 해나가면서 자신감에 차 있었지만, 그런 내 모습이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는 않았을까.

 

내가 가진 것들을 지나치게 신뢰했던 것 같다. 기도 없이 수시를 쓸 대학원들을 정해버렸다. 자소서를 쓸 내용도 주님의 뜻을 구하지 않고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좋은 방식으로 쓸 내용들을 다 정해 버렸다. 하나님은 그런 나를 조용히 지켜보셔야 했다.

 

'학교 정하는 거야 그냥 정할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이 생각은 아이성을 앞에 두고 정탐 결과와 거기에 따른 인간적인 판단에만 의지했던 여호수아의 생각과 비슷한 것이 아닌가. 하나님께서 나에게 요구하시는 삶의 원칙과 방향은 작은 것이든 큰 것이든 관계 없이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내가 아무리 대학원 준비를 철저히 잘 했다 할지라도 내 믿음의 근거는 내 스팩이 아니라 하나님이 되어야 한다.

 

잊지 말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을 허락하신 이유는 단순히 그들이 그 땅에 들어가 잘 살라는 것이 아니었음을. 가나안의 여정은 하나님만을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자신의 백성들을 만드시기 위한 그분의 연단 과정이었음을 잊지 말자. 나에게 영혼을 살리는 의사라는 목표를 주신 것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이라는 목적지를 주신 것과 같은 의미이다. 내게 젖과 꿀이 흐르는 삶을 허락 하시기 위함이 아니라, 그 목표를 향해 가는 과정을 통해 하나님 한 분만 의지하게 하기 위함이다.

 

그러니 다시 무릎 꿇자. 주님의 말씀을 늘 기억하고 그분이 공급하시는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으며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나를 지키시는 그분을 신뢰하면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자.

 

 

20100316

반응형

'사람 : 삶 이야기 > 2004-2010 대학 & 군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려놓음  (0) 2019.08.21
무거운 이야기  (0) 2019.08.21
백만불짜리 웃음  (0) 2019.08.21
소망의 이유  (0) 2019.08.21
Prodigal son vs. Prodigal Father  (0) 2019.08.21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네이버 밴드에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